‘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또래 집단의 부조리에 저항하다가 결국 굴복하게 되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전학생 한병태이고 대척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이는 학급 반장인 엄석대인데,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작품에 각기 다른 3개의 결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버전은 이문열의 원작 소설에 나온다. 세월이 흘러 대기업을 다니던 한병태는 세일즈맨의 신화를 꿈꾸며 퇴사하지만 번번이 헛물만 켜다가 실업자 신세가 된다. 그가 어른이 돼 마주한 세상은 20여년 전 엄석대가 다스리던 초등학교 교실과 다를 게 없었다. 한병태는 오래전 교실에서 쫓겨나듯 도망쳤던 엄석대가 지금은 어딘가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실패할 예감이 짙은 내 삶을 해명할 길’이 생기니까.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만다. 한병태는 휴가지에서 엄석대를 목격한다. 수갑을 차고 경찰에 끌려가는, 처참하게 몰락한 엄석대의 모습을.
“그날 밤 나는 잠든 아내와 아이들 곁에서 늦도록 술잔을 비웠다. 나중에는 눈물까지 두어 방울 떨군 것 같은데, 그러나 그게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그를 위한 것이었는지, 또 세계와 인생에 대한 안도에서였는지 새로운 비관에서였는지는 지금에조차 뚜렷하지 않다.”
또 다른 결말은 이문열이 소설 출간 33주년을 기념해 2020년 내놓은 신판에 담겨 있다. 이문열은 “옛날 초고 더미에서 그때 쓰지 않았던 결말 하나를 찾아내 소개한다”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스토리에서 중년의 엄석대는 화려한 삶을 일군 것으로 그려진다. 외제차를 몰고 나타난 엄석대는 피서지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한 한병태에게 호텔을 잡아준다. 룸살롱에도 데리고 간다. 밤 11시가 되자 엄석대는 술자리를 끝내자면서 일어서고, 소설은 이다음 이어진 한병태의 행동을 묘사하면서 끝이 난다.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나 석대를 앞질러 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를 모셔온 사람처럼 공손히 문을 열고 그를 기다렸다.”
마지막 세 번째 결말은 1992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에 나온다. 영화에선 엄석대 인생의 성패가 명확히 드러나진 않는다. 어른이 된 한병태는 그 옛날 엄석대가 왕국을 일궜던 시절 담임이었던 교사의 빈소를 찾는다. 엄석대는 이곳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친구들은 저마다 엄석대를 둘러싼 소문을 늘어놓지만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엄석대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이슥한 시각 엄석대 이름이 적힌 근조화환만 들어올 뿐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는 새벽녘 빈소를 나서는 한병태의 모습이 등장하고, 그다음엔 한병태의 나직한 내레이션이 화면 위에 포개진다.
“한 다발의 꽃으로는 그의 성공과 실패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오늘도 여전히 그때의 5학년 2반 같고, 그렇다면 그는 어디선가 또 다른 급장의 모습으로 5학년 2반을 주무르고 있을 게다. 오늘 그를 만나진 못했지만 앞으로도 그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솔직히 확신할 수 없다.”
이렇듯 다른 메시지가 담긴 결말들을 차례로 늘어놓은 것은 한국 사회가 언젠가 마주할 미래가 이들 중 하나일 수 있어서다. 폭정의 폭주를 벌인 지도자, 위험천만한 결단으로 국가를 수렁에 빠뜨린 그 남자가 훗날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본다. 현실에서 먼 훗날 우리가 마주할 엄석대의 미래는 어떨지, 대한민국의 수많은 한병태는 어떤 상황을 맞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누구도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의 진보는 마을버스처럼 느리게 오는 법이니까.
박지훈 디지털뉴스부장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