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을 데워 국그릇에 담고, 찬으로 김치를 곁들였다. 단출한 식탁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봄이라지만 꽤 쌀쌀한 아침, 빈속을 뜨끈하게 채우기에 더없이 좋은 한 끼였다. 게다가 미역국은 엄마, 김치는 이모가 챙겨 준 것. 두 분이 차려준 밥상에 고작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니, 하루의 시작이 다복해 감사했다. 숟가락을 들어 국을 한입 떠먹었다. 깊고 구수한 국물에 입맛이 절로 돌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평소처럼 큼직하게 썰린 소고기 대신 이유식 재료처럼 잘게 다져진 소고기가 눈에 띄었다.
엄마가 일부러 그랬다는 걸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딱딱하거나 질긴 음식을 드시기 힘들어하셨으므로. 노모의 생신을 앞두고 한솥 가득 미역국을 끓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드럽게 푹 끓여져 어머니가 편히 드시길, 어서 기력을 되찾으시길 바랐으리라.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을지도 모른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헤아리며 ‘앞으로 얼마나 더 미역국을 대접해드릴 수 있을까, 다섯 번, 일곱 번, 아니 딱 열 번만 더’, 그렇게 애절한 마음이 가슴속에서 보글보글 끓어올랐을 터이다.
세월은 누구도 비켜가지 않으니 머지않아 엄마도 연로해질 것이다. 그 언제가 되었을 때, 당신처럼 미역국을 끓여드리는 살뜰한 딸이 될 수 있다면, 해마다 케이크가 놓인 생신상을 앞에 두고 함께 웃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큰 축복이니까.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테니 부디 오랫동안 부모를 섬길 수 있는 축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했다. 국그릇을 들어 남은 국물을 들이켰다. 왠지 엄마의 마음 같아 한 방울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내 몸을 덥힌 건 미역국의 온기였지만 마음을 데운 건 엄마의 지극한 효심이었다. 사랑은 이렇게 가장 소박한 자리에서 조용히 머물다가 대물림되는가 보다. 다시 뵌 외할머니의 얼굴빛이 유달리 곱다. 엄마가 웃는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