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법원의 회항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베네수엘라 범죄조직원들로 추정되는 이민자 추방 작전을 강행했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엑스에 수갑을 찬 남성들이 비행기에서 끌려 나와 교도소로 들어가는 3분 분량의 영상을 올리며 “트럼프 행정부가 추방한 베네수엘라 범죄조직 ‘트렌 데 아라과(TdA)’ 소속 238명이 도착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테러범수용소(CECOT)로 이송돼 최소 1년간 구금될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엘살바도르 정부에 600만 달러(87억원)를 지불하고 TdA 조직원 300여명을 1년간 수감토록 하는 계약을 맺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14일 적성국 국민법을 적용해 TdA 소속 베네수엘라 국적 이민자를 추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튿날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의 제임스 보스버그 판사는 추방령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결정을 선고했다. 보스버그 판사는 추방 대상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이미 이륙했다면 “회항시켜야 한다”고 구두로 지시했다.
하지만 CNN은 명령 이후 백악관 고위 인사들이 행정부 관리들과 모여 논의한 뒤 비행기를 되돌리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정부가 법원 명령을 무시한 셈이다. 데이비드 슈퍼 조지타운대 법학과 교수는 “원한다면 비행기를 돌릴 수 있었다”며 “이건 법원에 대한 모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법원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근거가 없는 이 명령은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영토에서 추방된 뒤에 내려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추방 권한에 대해 연방법원은 관할권이 없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로이터통신은 “트럼프가 미국의 삼권분립 체제 아래서 사법부의 독립성에 도전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 출범 이후 사법부에 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공세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공무원 해고를 비롯한 정부의 역점 시책을 법원이 가로막는다는 이유에서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담당 부비서실장은 최근 엑스에서 판사들을 가리켜 “급진적이고 악랄하다”고 맹비난했다. 앤디 오글스 공화당 하원의원도 “트럼프를 표적으로 삼은 판사들은 정치적 사기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과 마이크 리 상원의원 등은 판사에 대한 탄핵을 주장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트럼프가 집권 1기 때 임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도 최근 정부의 요청을 기각하는 표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트럼프 지지자들의 공격 표적이 됐다. 일단 사법부는 이런 비난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판사들과 그 가족에 대한 위협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