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한 것에 대해 외교부가 17일 “외교 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을 놓고 국내 정치권이 ‘자체 핵무장론’ ‘민주당의 반미정서’ 등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외교·안보 정책상의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외교부는 이날 “미국 측을 접촉한 결과 미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 최하위 단계에 포함시킨 것은 외교 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미국 측은 외교부에 한국의 한 연구소 관계자들이 DOE 산하 연구소 등에 출장을 갔을 때나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 등에서 보안 규정을 어긴 사례가 적발돼 명단에 포함됐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미측은 민감국가 리스트에 등재가 되더라도 한·미 간 공동연구 등 기술협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확인했다”며 “정부는 한·미 간 과학기술 및 에너지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미 정부 관계기관들과 적극 협의 중이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속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도 한국이 미 에너지부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되었다가 미측과의 협의를 통해 제외된 선례도 있다”고 했다. 미국은 한국이 정치적 격변기에 있던 1980, 90년대에도 민감국가 명단에 한국을 올렸다가 해제한 바 있다.
DOE가 바이든 행정부 임기 말이던 지난 1월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나 그 배경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자체 핵무장론과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탄핵 정국, 한·미 원전 기술 분쟁 등이 배경으로 거론된 바 있다.
앞서 민감한 경제·안보 이슈에서 ‘패싱’을 당한 정부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최 권한대행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현안 간담회를 주재하고 “DOE의 민감국가 포함 사안에 대해서는 관계 기관들이 미국 측에 적극 설명해 한·미 간 과학기술 및 에너지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특히 “산업부 장관이 이번 주 중 미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적극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민감국가 효력이 발생하는 다음 달 15일 이전 지정 철회를 목표로 고위급 외교를 통해 미국 측을 설득한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에너지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기 위해 지난달 말 미국을 방문했던 안 장관은 3주 만에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다만 외교가에서는 민감국가 지정 철회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우려가 크다. 전임 행정부의 결정이라 해도 오랜 기간 내부 논의를 거쳐 이뤄진 만큼 한 달 만에 이를 되돌리기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민감국가 문제를 한국에 대한 전략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