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겉으로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결과에 승복하겠다지만 실제 보여주는 모습은 영 딴판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우리는 선고에 승복할 테니 탄핵이 기각되면 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선동하는 더불어민주당도 빨리 승복을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여당에선 지도부만 승복을 이야기할 뿐 다른 사람들은 그럴 의지가 전혀 안 보인다. 여당 의원 62명은 이날에도 일주일째 헌재 앞에서 탄핵 기각·각하를 촉구하는 릴레이 시위를 이어갔다. 그들이 벌이는 기자회견이나 탄핵반대집회 연설에선 “헌재는 황소 발에 밟혀 죽는 개구락지 신세” “헌재가 국민 불신을 얻으면 가루가 될 것”이라는 위협적 언사도 쏟아지고 있다. 지도부는 “그건 개별 의원들 뜻이고 승복이 당론”이라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야당도 말 따로 행동 따로이긴 한가지다. 민주당은 여당의 승복 요구에 “우리도 승복하겠지만 여당의 승복 약속이 진정성 있으려면 헌재 앞 릴레이 농성부터 철수시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 역시 이날까지 엿새째 국회에서 광화문까지 탄핵을 촉구하는 거리행진을 펼쳤다. 광화문에선 의원들이 단식투쟁 중이고, 시민단체들과 연대 투쟁도 하고 있다. 여당이 벌이는 헌재 앞 시위나 국회 제1당의 거리행진·단식투쟁 모두 헌재와 재판관들을 압박하고 위협하는 것이긴 마찬가지다.
더 걱정되는 것은 연일 이어지는 집권당과 제1야당의 장외투쟁과 헌재를 향한 압박이 탄핵 찬반 시민들의 불복 의지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주말 대규모 집회에 이어 월요일인 어제도 헌재 주변과 광화문에서 10건 가까운 탄핵 찬반 집회가 열렸다. 또 곳곳에서 찬반을 놓고 말다툼이나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시민들도 많이 흥분돼 있는 상태다. SNS 등에선 “헌재를 날려버리자” 등의 극단적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을 진정시키고 승복 분위기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제도권 정치인들이 오히려 그 반대되는 행동만 하고 있으니 딱하다.
아울러 누구보다 앞장서서 승복 의지를 보여야 할 윤 대통령이 계속 침묵하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현 상황을 내버려둔다면 충돌은 더 격해지고, 자칫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이 진정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지도자라면 헌재 선고 전 선제적으로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내야 하는 이유다. 더 늦기 전에 현명한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