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은 미국 시민권자다. 대한민국 국적자가 아니라도 1년의 절반 이상(183일)을 한국에서 지내거나 주소지를 두면 국내에 납세 의무가 있다. 또 한국 거소일이 183일을 넘지 않아도 국내 사업에 관여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판단된다면 국내 과세 당국에 세금을 내야 한다. 위의 2가지 조건 중 최소 하나에 해당하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행위를 우리는 역외탈세라고 부른다.
김 회장은 이미 역외탈세 혐의로 세금을 추징당한 전력이 있다. 국세청은 2022년 소득세를 탈루한 혐의로 김 회장 개인에 대해 약 400억원을 추징했다. 김 회장은 2018년 MBK파트너스가 ING생명, 코웨이 등을 매각하면서 거둔 1조원가량의 양도차익 중 1000억원가량을 성과급 명목으로 받았다. MBK 측은 김 회장이 미국 국적자인 데다 한국 법인 소속도 아니라는 점을 들어 관련 소득 신고를 누락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김 회장이 관련 회사의 인수와 매각에 깊이 관여한 만큼 한국에서 벌어들인 소득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맞섰다.
의아한 점은 MBK 측은 김 회장이 국내에 체류한 기간이 183일이 되지 않고, 미국 과세 당국에 이미 관련된 세금을 냈다며 강력히 반발했지만 종국에는 국세청 과세에 불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상 김 회장 같은 검은 머리 외국인들은 한국 국세청의 역외탈세 혐의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미국 국적이라면 전 세계 어디에서 소득이 있건 납세 의무는 본국에 있다는 미국 과세 당국의 룰에 충실히 따르는 마당에 단지 ‘검머외’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이중과세를 당한다는 피해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세정 당국 전직 관료는 “당시 김 회장이 한국 법원에 소송을 내거나 ‘한국에서의 과세가 억울하다’며 미 과세 당국에 요청하는 상호합의절차(MAP) 모두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사모펀드 검머외’인 LG가(家) 맏사위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도 최근 국세청과의 100억원대 소득세 부과 불복 소송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윤 대표가 미국 국적자에 연간 국내 거소일이 183일이 되지 않지만 실질적으론 국내 거주자로 판단했다.
김 회장과 윤 대표 사건만 보면 역외탈세를 잡아내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외국 국적의 자산가들은 대형 로펌 등 전문가들의 조력을 받아 국내 체류기간이 183일이 되지 않도록 플래닝하고, 국내 사업에 관한 결정과 권한이 있으면서도 이를 숨기는 데 능하다. 국내 거소일이 183일이 넘지 않는 역외탈세 혐의자의 국내 사업 관여 정도를 입증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2022년 국세청과 김 회장의 싸움도 국세청의 완승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통상 수백억원대 역외탈세 행위의 경우 최대 60%의 가산세와 함께 검찰 고발 조치가 이뤄지지만 김 회장은 예외였다. 당시 세무조사 역시 시민단체의 신고가 있었고, 국세청이 자발적으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
국세청이 최근 시작한 MBK에 대한 세무조사가 주목되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MBK 측은 5년마다 이뤄지는 정기 세무조사라고 하지만 정기 조사에 ‘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는 서울지방청 조사4국이 투입되는 경우는 없다. 국세청은 지난 세무조사 이후 MBK가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 거둔 수조원의 차익에 대해 법인과 핵심 임원들에 대한 소득 탈루가 있는지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알려졌다. 미 경제 매체 포브스는 2023년 한국의 부자 1위로 97억 달러(약 14조원) 자산을 가진 김 회장을 꼽았다. 국세청이 한국의 최대 부호에게 이번에는 매서운 칼끝을 겨눌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성규 산업1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