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슈뢰딩거 관세

입력 2025-03-18 00:40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1935년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인 양자의 이중성을 증명하려고 고안한 게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이다. 상자 속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면 독가스 방출로 고양이는 죽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상자를 열기까지는 고양이는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중첩 상태’다. 뚜껑을 여는 순간 고양이는 살거나 죽은 하나의 상태로 확정되는데 이를 ‘파동 함수 붕괴’라고 부른다. 거시 세계에서 불가능할 법한 일이 이 실험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실험이다.

그런데 요즘 글로벌 경제가 이처럼 중첩 상태에 빠진 듯하다. 지금 금융시장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을 두고 ‘슈뢰딩거 관세’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캐나다와 멕시코산 철강, 알루미늄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다가, 돌연 5시간 만에 철회했다. 지난 1월 취임 직후에도 25% 부과 가능성을 언급하더니, 발효 하루 전 한 달을 유예했다. 시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세계 경제가 트럼프 관세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는 않는 모순에 빠져 있는 셈이다.

그 영향은 고스란히 수치로 나타났다. 미국 기업들이 관세 시행 전 수입품 사재기에 나서자 미국의 1월 무역 적자는 1314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찍고,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나 오르는 등 경제 지표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GDPNow 모델은 1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2.4%까지 낮췄다가,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인한 220억 달러 어치 금 수입이 GDP 산정에 예외가 된다는 점을 깨닫고 보정을 거쳐 -1.6%로 조정했다. 고양이의 생사 관측(관세 집행)이 이뤄지기도 전에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세계경제뿐 아니라 자국 경제도 나락으로 떨구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터지는 이유다. 트럼프가 상자를 열 때까지 경제는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는 중이다. 고양이가 살아있기를 바라듯, 언제까지 세계 경제도 살아있기를 희망고문해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