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게 깔린 밤 10시, 대부분 잠자리에 들 시간에 낮보다 더 뜨거운 곳이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자리한 빙상경기장은 격렬한 열기로 가득하다. 빙판 위에 선 이들은 2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여성 20여명. 금융인, 변호사, 간호사, 회사원 등 직업은 각양각색이지만, 이들은 아이스하키라는 연결고리로 하나로 묶였다.
거친 스포츠, 남성 스포츠라 알려진 아이스하키는 한국에서 대표적인 비인기 종목이었다. 하지만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남자 대표팀이 동메달을 따면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동시에 여성 직장인 사이에서 아이스하키 동호회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어떤 매력이 이들을 붙잡은 걸까. 여성 직장인 아이스하키팀인 ‘로켓걸스’ 팀원들을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아이스웍스 역삼점에서 만났다. 스케이트, 마스크, 글러브 등 장비로 중무장한 여성들은 빙판 위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는 한 발 밀기, 두 발 밀기, 슬라이딩 같은 기본기부터 익혔다. 이어 퍽(아이스하키에서 사용하는 공)을 다루는 기술인 스틱 핸들링과 패스, 슈팅 연습을 2시간가량 했다.
광고 전문기업에서 일하는 최혜령(27)씨는 “바쁜 업무로 체력이 떨어져 새로운 취미를 찾고 있었어요. SNS에서 여성들이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도전하게 됐다”고 했다. 아무래도 거친 스포츠 경기이다 보니 걱정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즐거움과 성취감이 더 크다고 한다. 최씨는 “아이스하키는 여성도 즐기기에 안전하고 운동량이 많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반전미를 보여주는 멋진 사진도 찍을 수 있어서 좋다”고 강조했다.
로켓걸스 팀원들은 아이스하키가 협동심과 빠른 판단력을 요구하는 경기라서 직장 생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은다. 성인 취미 아이스하키 클럽인 로켓츠의 신상윤(28) 코치는 “우리 클럽에서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강습생 600여명 가운데 80% 정도가 여성일 정도로 아이스하키가 여성들에게 큰 인기”라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인 아이스하키로 모두가 즐겁고 건강한 삶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글·사진=권현구 기자 stow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