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역의 힘, 출산율 반등의 열쇠

입력 2025-03-18 00:34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9년 만에 반등했다. 2024년 출생아는 23만8300명으로 전년 대비 3.6% 증가했고, 합계출산율은 0.72명에서 0.75명으로 상승했다. 출산율 상승은 전국에 걸쳐 이뤄졌다. 전국 17개 시도 중 14곳에서 합계출산율이 증가했는데, 4분기에는 모든 시도에서 합계출산율이 증가했다. 이는 출산율 반등의 배경에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대응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동안 지자체는 각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정책으로 저출생 극복을 위한 정책적 실험을 시도해 왔다. 대표적 사례는 여러 저출생 사업을 하나로 묶어 출생아 1명당 18세까지 총 1억원 상당을 지원하는 인천의 ‘아이플러스 1억 드림’을 비롯한 ‘아이시리즈’ 정책이다.

정책 시행 후인 지난해 인천 출생아 수는 전년 대비 11.6%나 증가하며 전국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인천 남동구가 2019년 전국 최초로 시작한 아빠 육아휴직 장려금도 주목해볼 만하다. 남성 육아휴직자에게 정부 육아휴직급여에 더해 장려금을 추가 지원해 육아휴직으로 인한 소득 감소를 줄여주며 전국 20여개 지자체로 확산됐다. 경북도의 ‘소상공인 아이보듬’은 출산한 소상공인에게 월 200만원을 6개월간 지급해 직장인과 달리 출산 후에도 쉴 수 없는 자영업자의 숨통을 틔워줬다.

서울의 ‘미리내집’이나 인천시의 ‘천원주택’은 결혼의 큰 걸림돌이던 신혼부부의 주거문제 해소에 도움이 됐다. 충남의 ‘아이키움뜰’, 경북의 ‘119아이행복돌봄터’, 광주의 ‘삼삼오오 이웃집 긴급돌봄’은 빈틈없는 돌봄 제공으로 양육 부모에게 기댈 언덕이 돼주었다.

이러한 지자체의 선도적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는 부동산 지방교부세 교부기준에 저출생 대응 관점을 강화하고, 출산양육 분야에 대한 지자체 재원을 연 1조원 확충했다. 또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사업 범위도 틈새 돌봄, 일·가정 양립 등으로 확대하며 지자체와 발을 맞췄다. 이는 저출생 문제 해소에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하모니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중앙정부가 정책의 큰 틀을 제공한다면 지자체는 지역별 상황과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해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보완하며 지역 맞춤형 정책을 시행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지난해의 출산율 반등이 확고한 V자 반등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강화하고 확대해야 한다. 지자체는 현장에서 효과적인 정책을 시행하며 출산율 반등의 주역이 돼온 만큼 앞으로도 지역별 강점을 살린 맞춤형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는 전국적인 정책 방향과 재정을 뒷받침하고 지자체에 자율성을 부여해 지역 상황에 맞는 정책 집행을 유도해야 한다.

출산율 반등 흐름을 더욱 확산시키기 위해 지역 간 정책 격차를 줄이고 효과가 입증된 정책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지역 간 정책 불균형은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 2019년 기준 전국 226개 시군구 중 출산 건수가 0인 곳이 71곳에 달했는데 이 중 57곳은 산부인과가 아예 없는 지역이었다. 의료, 보육 등 기본 인프라 부재가 출산율 저하를 촉진하는 셈이다.

이에 인접 지역을 광역단위로 묶어 생활권을 공유하는 접근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도시와 주변 중소도시가 연계해 광역교통망과 주거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작은 지역단위끼리 묶어 국공립어린이집이나 산후조리원 같은 필수시설을 권역별로 균형 있게 배치하는 것 등이 좋은 예다.

저출생 극복의 열쇠는 중앙 주도의 획일적 처방이 아닌 지역 맞춤형 정책에 있다. 중앙과 지방의 유기적인 협력, 지역공동체의 노력이 어우러진다면 저출생 위기극복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