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동맹 관계인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명단에 올린 사실이 공식 확인되면서 외교가는 혼란에 빠졌다. 특히 ‘워싱턴 선언’ 등 한·미 관계 격상을 성과물로 내세웠던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정권 교체를 앞둔 올 초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탄핵 정국에서 파생한 각종 국내적 상황이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비상계엄 선포와 연이은 대통령 및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로 인한 정치적 혼란, 일각에서 제기된 자체 핵무장론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16일 “동맹국이 미국의 민감국가 범주에 들어가는 건 이례적인 사건으로 한·미 관계 역사에서 초유의 일”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여권을 중심으로 고개를 든 한국 자체 핵무장론을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지목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민감국가 지정은 핵무장에 관한 국내 정치인들의 발언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도 “미국이 자체 핵무장에 대한 국내 논의에 대해 ‘시기상조이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경고를 던진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2023년 1월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 군축문제연구소인 무기통제협회 데릴 킴볼 사무총장은 “(자체 핵무장 관련) 도발적인 발언에 비춰 볼 때 한국은 핵확산 위험 국가이고, 민감국가 지정은 (이를 고려한) 신중한 결정”이라며 “한국은 핵무기 생산을 위한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미국의 승인 요청 가능성 자체가 배제된다”고 말했다. 우리 외교 소식통도 “미국이 단순히 주시하는 단계를 넘어 한국이 실제 결단을 내릴 때를 대비해 경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정치적 혼란을 원인으로 꼽는 시각도 많다. 미국은 계엄 선포 당시 한국 정부의 소통 라인에서 배제됐으며, 필립 골드버그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이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었다. 조셉 윤 주한 미국 대사대리도 최근 탄핵 정국으로 한국 정부와 원활한 소통이 재빨리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국가 안보나 지역 불안정 문제는 민감국가 지정의 대표적 사유이기도 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에는 계엄 선포와 그 후폭풍으로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론 논의가 아예 실종됐던 시기”라고 말했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한 가지 원인이 아니라 비상계엄에 따른 정국 혼란과 맞물린 핵무장론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했다.
민감국가 지정 효력이 발생하면 원자력·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 협력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민감국가 최하위 범주라 교류 제한이 엄격하지는 않겠으나 그 자체만으로도 한·미동맹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박민지 박준상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