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안에서 성장한 교회, 돌봄 중심에… “받은 사랑 흘려보내야죠”

입력 2025-03-18 05:01 수정 2025-03-20 12:04
지난 6일 서울 양천구의 서서울어르신복지관에서 열린 가요교실에서 어르신들이 강사의 지도에 맞춰 노래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사회적 고립감이 심각한 시대다.
사회관계망에서 벗어난 이들이 많아진 시대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히 10:24)는 성경의 가르침은 절실하다. 국민일보는 올 한 해 '너와 나, 서로 돌봄'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기독교적 섬김과 사랑을 향해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4부에 걸친 연중 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에 끊어진 관계를 잇고 서로 돌보는 교회의 노력을 조명하고, 이를 통해 치유되고 성장하는 공동체의 희망을 연재한다.



“국민학교 시절 문방구 사장님을 복지관에서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났어요. 제 어린 시절 크고 작은 허물을 눈감아 주셨던 분을 저희가 돌볼 수 있다는 감사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풍채가 좋은 중년의 목사는 수년 전 교회가 위탁운영하는 어르신복지관에 이사장으로서 방문했던 때를 떠올리며 이야기하다 또 한 번 울었다. 아버지 세대부터 53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신월동교회의 고신원(54) 목사 이야기다. 최근 서울 양천구 신월동교회에서 만난 고 목사는 자신이 나고 자란 이 지역에서 이웃의 돌봄을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여러 번 울먹였다. 이웃 안에서 성장한 교회는 이제 이 지역 돌봄의 중심에 서 있다.

동생의 죽음·싱글파파 고난이 준 유익

신월동교회가 있는 신월3동은 독거노인, 한부모가정 등 취약계층 비중이 34%로, 구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 김포공항과 가까운 공항소음피해 지역으로 낡은 저층 주택이 밀집돼 있어 좋은 입지도 아니다. 교회 성장을 위한 이전을 고민한 적도, 실제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이웃이 보여준 사랑이 교회를 붙잡았다.

고 목사의 동생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통사고로 사망해 갑작스레 경기도 고양의 공원묘지에 묻어야 했을 때 소식을 알고 한달음에 달려온 성도와 이웃들은 횃불을 들고 불을 밝히며 그의 가족을 위로했다. 고 목사가 담임을 맡은 지 1년 만인 2013년 갑작스레 아내가 소천하며 초등생 자녀 4명을 홀로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도 그랬다. 4남매 교육은 지역아동센터가, 엄마의 빈자리는 성도와 이웃이 채워줬다.

“예배 준비로 바쁘면 성도들이 애들을 집에 데려가서 밥을 먹이고 재워서 보내주고, 신발도 새로 사서 신겨 보내셨어요. 한번은 동네 친구 할머니가 교회 마당에서 혼자 노는 저희 애를 데려가서 안경을 맞춰 주기도 했고요.”

신월동교회 인근 초등생들이 사무엘지역아동센터에서 외부강사 수업을 듣는 장면. 사무엘지역아동센터 제공

고 목사는 그런 동네를 차마 떠날 수 없었다. 대신 교회는 받은 돌봄을 다시 지역에 흘려보내는 곳이 됐다. 교회는 특히 아이들 교육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교회가 양천구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5곳의 돌봄시설 중 두 곳이 아동·청소년을 위한 곳이다. 교회 지하에는 초등생 방과 후를 책임지는 사무엘지역아동센터가, 교회 바로 옆 비전센터엔 중·고등학생이 공부하는 다니엘청소년지역아동센터가 있다.

학교를 마친 뒤 지역아동센터 2곳에 오는 초등생 16명, 중·고등학생 19명은 숙제하고 보충수업을 듣거나 악기 연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 뒤 저녁까지 먹고 집에 간다.

취약층 돌보미를 자처하다
교회가 최근 개강한 실버대학에 참석한 어르신 성도와 주민들이 수업 후 식사를 하고 있다. 신월동교회 제공

구청 복지관 세 곳에선 어르신을 위한 시설을 위탁운영한다. 교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서서울어르신복지관과 서서울데이케어센터,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엔 동네 어르신들의 점심 장소인 경로식당이다. 지난 6일 오전 방문한 복지관 1층엔 ‘하나님의 사랑으로 어르신과 지역사회를 섬긴다’는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한 강의실에서 사군자 수업을 듣던 김태균(가명·92)씨는 집 근처 복지관을 두고 일부러 이곳을 찾는다며 “여기 와야 심심하지 않다”고 했다. 2층 가장 큰 교실에선 어르신 100여명이 흥에 겨워 노래하고 있었다.

교회는 어르신 돌봄 공간에 적지 않은 재정을 쓴다. 사회복지시설 운영지원금인 법인전입금을 매년 2500만원가량 낸다. 고 목사는 “출석 교인 600명인 교회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당회에서 수석장로님 등이 ‘지역을 위한 일이라면 돕겠다’고 힘을 보태주었다”고 했다. 이런 교회의 지역 돌봄을 교회 성도들도 누린다.

이웃 사랑받는 교회가 되기까지

교회 앞엔 중학교와 주민센터가 있다. 교회는 학교 주최 어르신 행사에 떡국을 준비하고 학생 장학금을 주거나 지자체 취약계층 돌봄 사업에 꾸준히 기부금을 낸다. 전종옥 양서중학교 교장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이 교회를 통해 아가페 사랑이 무언지를 느낀다”고 했다. 오원준 신월3동 동장은 “교회가 이웃을 돕는 걸 10년 정도 지켜보며 교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했다.

지척의 작은 교회와도 함께 걸어간다. 부흥회에 다른 교회 목회자를 강사로 세우고, 다른 교단 행사에 주차장을 내어주기도 한다.

고 목사는 ‘목사가 교회 밖에서 바빠야 한다’는 철학으로 지역 행사에도 얼굴을 수시로 비춘다. ‘교회가 좋은 일을 많이 한다’는 이웃 칭찬이 성도들에게 자부심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2018년 교회가 비전센터를 지으며 단 한 번도 민원을 받지 않은 건 그래서 자랑거리다. 고 목사는 “이웃이 우리를 지지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고 웃었다.

비전센터 4층엔 지난달 28일 330㎡(약 100평) 규모의 서울형 키즈카페가 문을 열었다. 교회 유치·초등부가 절반을 쓰던 곳인데 교사들의 제안으로 키즈카페가 없던 지역에 더 넓은 실내 놀이터를 선물할 수 있었다. 고 목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교회’라는 한 이웃의 말처럼, 동네에 살며 한 번쯤 들를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