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올해 초 조 바이든 행정부 임기 막판에 한국을 원자력 등 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될 수 있는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에 포함시킨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 동맹인 한국을 북한·중국·러시아 등이 올라 있는 리스트의 하위 범주에 추가했다는 점, 한국 정부가 이를 제때 확인하지 못했고 명확한 지정 이유도 파악하지 못한 점을 두고 논란이 커지는 중이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한국을 ‘민감국가’에 포함시켰는지를 묻는 언론 질의에 “이전 정부가 2025년 1월 초 한국을 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에 추가했다”고 답했다. DOE는 한국을 SCL에 포함시킨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목록에 포함됐다고 해서 반드시 미국과 적대적 관계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현재 한국과의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없다”고 밝혔다.
DOE에 따르면 국가안보,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테러 지원을 이유로 특정 국가를 민감국가 리스트에 올릴 수 있다. 한국은 SCL 중 가장 낮은 등급인 기타 지정 국가이지만 미국의 적대국들이 대거 포함된 명단에 오른 것 자체가 문제로 지적된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에 예고나 사전 통보도 하지 않았다.
민감국가 출신 연구자들은 DOE 관련 시설이나 연구기관에서 근무하거나 연구에 참여하려면 더 엄격한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런 제한은 다음 달 15일부터 발효될 전망이다.
남는 의문점은 미국이 갑자기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배경이다. 미국이 이유를 밝히지 않아 추측만 무성한 상태다. 민감국가에 포함된 지난 1월 초는 한국에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혼란이 고조됐던 시점이다. 이에 미국이 ‘지역 불안정’을 이유로 지정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 정치권에서 핵무기 보유 여론이 고조된 게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정부가 한참 늦게 대응에 나선 점도 문제다. 외교가에선 미국이 결정을 번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