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야생동물 삵이 생태교란종 뉴트리아를 사냥하는 장면이 국내 연구진에게 포착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과거 삵이 뉴트리아를 포식한다는 주장은 여러 번 제기됐지만 실제로 삵이 뉴트리아를 공격하는 모습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4일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박희복 박사 연구팀은 경남 김해 화포천습지 생태공원에서 삵이 뉴트리아 새끼를 물고 있는 모습과 삵이 성체 뉴트리아를 사냥하는 장면을 사진과 영상으로 포착했다. 해당 자료는 국제학술지 ‘생태와 진화’에 ‘포식자와 먹이 간 역학관계의 새로운 통찰: 삵이 뉴트리아를 사냥한다는 첫 증거’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2월 발표됐다.
연구팀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삵은 성체 뉴트리아를 덮쳐 제압에 성공한다. 다만 근처에 있던 다른 뉴트리아 성체가 곧바로 반격하자 사냥했던 뉴트리아를 놓고 도망친다. 이후 다시 화면에 등장한 삵은 다른 뉴트리아들에게 재차 공격을 당하고 다시 도망간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삵이 뉴트리아의 자연적 포식자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면서도 “뉴트리아가 협력해 방어하는 행동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생태계 질서를 파괴하는 대표적 유해 동물인 뉴트리아는 1980년대 말 식용 및 모피용으로 국내 수입돼 사육됐으나 수요가 적어 대부분 버려졌다. 이후 뉴트리아는 낙동강 하류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번식했고, 2009년 포유류 가운데 처음으로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됐다.
앞서 국립생태원 연구팀은 뉴트리아 개체수 감소를 위한 국내 토종 포유류 포식자를 찾는 데 주력해 왔다. 과거 생태교란종의 대명사였던 황소개구리가 왜가리나 가물치, 메기 등에 의해 숫자가 줄어든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뉴트리아와 서식지가 겹치는 삵과 수달, 너구리를 대상으로 연구를 벌여 그중 삵을 포식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종으로 확인했다.
다만 멸종위기종 삵이 단시간에 뉴트리아 개체수를 줄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박 박사는 “삵이 많으면 뉴트리아 개체수에도 영향을 주겠지만 뉴트리아 서식지인 수변 지역은 도로가 발달해 삵이 유입되더라도 로드킬로 죽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트리아 억제를 위해서라도 삵 보호가 절실한 셈이다.
장기적으로 삵이 뉴트리아의 천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생태원 관계자는 “연구가 중단돼 논문에는 2015년과 2017년 촬영분만 실렸다”며 “현 생태가 어떤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