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여름철 남풍 강하게 불어
연안 표층 해수는 바다로 나가고
저층 해수 올라오는 ‘용승’ 발생
저층 해수 고농도의 영양염 포함
수산 자원 풍부한 해역 만들어내
연안 표층 해수는 바다로 나가고
저층 해수 올라오는 ‘용승’ 발생
저층 해수 고농도의 영양염 포함
수산 자원 풍부한 해역 만들어내
지난해 8월 초 한반도 남쪽 주변 해수면 온도가 29도를 넘어선 가운데 동해안은 부산 기장군 고리 앞바다가 13.0~18.5도로 기록됐다. 여름 바다에서 피서객을 놀라게 한 차가운 바닷물, 즉 냉수대가 나타난 것이다. 해무를 동반하기도 하는 냉수대 발생은 연안에서 저층의 차갑고 무거운 바닷물이 해수면으로 올라오는 ‘연안 용승’ 현상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중력을 거스르는 이 현상은 바람이 해안선과 평행하게 불 때 나타나는 흥미로운 사건이다. 용승을 해양학적으로 이해하는 이야기의 출발점은 19세기 후반 북극 탐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9~1881년 미국은 태평양에서 베링해협을 통과해 북극에 도달하는 항로 개척을 위한 자네트호 탐험(Jeannette Expedition)을 시도했다. 이 탐험의 전제는 극지해에 얼음이 없고, 태평양과 대서양의 해류와 연결된다는 ‘열린 극지해(Open Polar Sea)’ 가설이었다. 그러나 자네트호는 샌프란시스코를 출항해 불과 2개월 후 북극해에 진입하자마자 얼음에 갇혔고, 거의 2년 동안 표류하다 동시베리아 해안 북쪽에서 침몰한다. 자네트호 탐험의 실패는 대서양 쪽과 마찬가지로 ‘열린 극지해’가 환상이었음을 보여줬지만, 이후 북극해 해류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는 자료로 쓰인다.
침몰 3년 후 자네트호의 잔해물이 약 5400㎞ 떨어진 그린란드 남서쪽 해안에서 발견됐다. 이는 동부 시베리아 앞바다에서 북극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흐르는 해류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이었고, 이를 의미 깊게 받아들인 노르웨이 탐험가이자 훗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프리드쇼프 난센은 1893~1896년 프람호 탐험(Fram Expedition)을 진행한다. 난센은 유빙의 엄청난 압력에 견딜 수 있는 프람호를 건조했고, 이 목조선은 나중에 가장 북쪽(난센의 북극 탐험)과 가장 남쪽(아문젠의 남극 탐험)을 모두 항해한 기록을 갖게 된다. 난센 역시 북극점에 도달하지 못했으나 많은 과학적 관찰을 통해 북극해 중앙에서 최초의 해양학적 자료를 얻었다. 그는 북극해 유빙 흐름의 존재를 확인했고, 특히 얼음이 바람 방향과는 달리 오른쪽으로 일관되게 편향돼 표류하는 것을 알게 됐다. ‘에크만 수송’으로 알려진 이 현상은 해양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난센은 얼음이 바람 방향과 다르게 표류하는 이유가 지구 자전 때문임을 제안했고, 당시 학생이던 스웨덴의 반 발프리드 에크만이 이를 설명하는 수학적 이론을 개발한다. 바람이 불면 그 힘이 해수면에 전달돼 물이 흐르는데,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북반구에서는 바람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45도 각도로 흐른다. 표면층이 움직이면 그 아래층에도 층간 마찰로 인해 힘이 전달되고, 물의 이동 방향은 다시 오른쪽으로 바뀐다. 수층 사이에 힘 전달이 이어지면서 수심이 깊어질수록 유속은 줄어들고 흐름 방향은 나선형으로 오른쪽으로 계속 변한다. 이러한 수층 내 마찰력과 지구 자전 영향 사이의 상호작용 결과로 바람의 영향이 미치는 전체 물기둥의 평균 수평 방향 수송은 바람 방향의 직각(북반구에서는 오른쪽, 남반구에서는 왼쪽)으로 나타나며, 이를 이론 개발자 이름을 따 ‘에크만 수송’이라고 부른다.
바람과 물 사이 또는 수층 사이 마찰력과 지구 자전 효과의 상호작용 결과인 에크만 수송은 바람에 기인한 해류의 운동을 조절하는 주요 인자로 작용한다. 해수면층에 해수의 수렴이나 발산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름 계절풍은 남풍 계열이다. 동해안에 강한 남풍이 며칠간 지속되면 에크만 수송에 의해 표층 해수는 바람 방향의 오른쪽 직각 방향으로 이동한다. 즉 연안에서 바다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이때 연안 쪽에 생긴 공간으로 저층 해수가 올라오는 ‘연안 용승’이 발생한다. 만일 바람 방향이 반대라면 연안에 물이 쌓여 침강 현상이 나타난다.
대양에서도 에크만 수송은 여러 현상에서 수직 운동을 유도한다. 적도 해역의 북반구와 남반구에서는 각각 북동풍과 남동풍인 무역풍이 불고, 이 바람에 의한 에크만 수송으로 적도를 따라 ‘적도 용승’이 일어난다. 용승의 강도는 무역풍 세기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며, 엘니뇨 시기에는 약해지고 라니냐 시기에는 강해진다. 또한 태풍 중심 부근에서도 용승이 발생하는데, 태풍에 의한 바람은 북반구에서 반시계방향으로 불기 때문에 에크만 수송은 태풍 중심 부근에서 용승 조건을 만든다. 한편 대양의 대규모 순환에서도 에크만 수송은 가장 먼저 설명돼야 할 현상이다. 중위도 해역의 바람 조건에 따라 에크만 수송은 해수 침강을 일으키고, 이에 따라 내부 순환 형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용승 해역에서 표층으로 올라오는 저층 해수는 높은 농도의 영양염을 포함하고 있어 식물 플랑크톤의 번식부터 어류의 성장까지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수산 자원이 풍부한 해역을 만든다는 의미다. 세계에서 중요한 어장이 위치한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서해안은 대표적인 연안 용승 해역으로, 지역적인 바람 특성에 따라 용승이 연중 계속되는 곳이 많다. 관련 문헌에 따르면, 이들 연안 용승 해역은 전체 해양 표면의 1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어업 생산량의 약 50퍼센트를 차지한다. 연안 용승 지역은 해무를 동반하는 등 해안 레저 활동에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부근의 연안 도시들은 상대적으로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해변 도시들이 이에 해당한다.
용승과 침강 현상은 단순히 바닷물의 움직임에 그치지 않고 해양 생태계와 인간의 생활까지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는 바람과 지구 자전이 만들어내는 우리와 연결된 해양의 숨결이다.
이재학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