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인천 동구에 있는 한 급식실. 이곳 앞에 수많은 사람이 줄지어 서서 식당 안으로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적게는 40대에서 많게는 80대로 보이는 노숙인들이었다. 이들은 식당 안으로 들어가 밥과 반찬을 식판에 담은 뒤 비어있는 자리에 가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환하게 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식사를 마친 노숙인들은 밥값을 지불하지 않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되는 식당이었기 때문이다.
투병 겪으며 낮아짐 경험
이곳은 인천 빈들의교회(탁동일 목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탁동일(47) 목사의 주도로 매주 수요일에 동인천에 있는 200여명의 노숙인과 차상위층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을 진행한다. 탁 목사는 교회를 개척했을 때부터 시종일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해당 사역을 해왔다.
여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 탁 목사는 교회 개척을 준비할 때인 지난 2005년에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그로부터 5년간 힘겨운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면밀하게 준비했던 교회 개척도 상당 기간 미뤄졌다. 다행히 완치가 되면서 정상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탁 목사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 한없이 낮아짐을 경험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교회 이름도 ‘빈들’이라고 지었다. 이는 ‘광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광야에 임하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닮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이에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과 복음 사역에 적극 나섰다.
처음에는 이 사역이 쉽지 않았다. 노숙인 중에는 성격이 거친 사람들도 있었고 경계심을 갖고 차갑게 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마음이 굳게 닫혀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탁 목사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기로 결심했다.
“노숙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교만했던 저를 낮추고 사명감을 일깨워주셨던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했어요.”
변화의 기적과 고난
진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다가가자 노숙인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탁 목사를 받아들였다. 밥만 먹고 가는 것에서 벗어나 탁 목사가 전하는 복음에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교회 안에는 노숙인들만 모여 예배를 드리는 시간도 마련됐다. 교회의 일반 성도들도 사역에 동참해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진행하기도 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걸음걸이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한번은 어떤 분이 ‘목사님, 창세기를 읽었는데 요셉의 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이 돼 한참을 울었다’고 하더군요. 요셉의 이야기가 감동이라는 것은 그가 정말 성경을 읽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이 극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자 보람입니다.”
사역 상황이 많이 좋아졌지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험에 들 때가 여전히 많다. 특히 변화됐다고 생각했던 노숙인이 다시 방탕한 삶으로 회귀할 때, 탁 목사는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 사람 앞에서는 “괜찮아요. 다시 돌아오면 된다”고 말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부정적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탁 목사는 기도를 한다. 흔들림 없이 이 사역의 길을 가게 해달라고 소원한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로서 이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면서 더 열심히 진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삶 한가운데로 찾아가는 목회
탁 목사는 노숙인 복음 사역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무료 급식소를 통해서만 노숙인들을 만나려 하지 않고, 노숙인들의 삶 한가운데로 직접 들어가려 한다.
“동인천 일대에는 무료 급식을 하는 장소가 다섯 군데나 됩니다. 급식소만을 통해서는 분산된 노숙인들을 다 만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사역의 방향을 조금 바꾸려 합니다. 교회에서 뜻을 같이하는 성도들과 함께 노숙인들에게 찾아가는 것입니다. 가서 성경공부도 하고 예배도 같이 드리는 사역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인천=글·사진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