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이었다.”
네이버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뤼튼)의 광고 집행 거부 논란이 커지자 이렇게 말했다. 실무진에서 발생한 우연한 실수이며, 숨은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의 해명치고는 궁색하다. 일이 잘못됐을 때 악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바로잡지 않고 넘어간다면 세상의 많은 일이 쉬워질 것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데도 단순 소동으로 치부하는 것은 책임 있는 기업의 태도가 아니다.
정말로 실수였는지 의심스러운 정황은 많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이 뤼튼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네이버는 이달 초 총 18건의 뤼튼 광고를 경쟁 서비스라는 이유만으로 게재하지 않고 모두 반려했다. 광고 이미지를 누르면 뤼튼 웹 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으로 연결되던 링크도 접속을 막았다. 검수 업무도 꽤 꼼꼼하게 진행해 실수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국회에서는 다른 스타트업도 네이버로부터 유사한 피해를 입었는지 들여다볼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가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거대 빅테크의 광고 집행을 경쟁 서비스라는 이유로 반려했다면 일견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회사를 설립한 지 4년이 채 안 된 스타트업이었다. 네이버와 뤼튼을 경쟁사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네이버는 국내 검색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대기업이다. 영세한 기업의 존폐를 결정 지을 위치에 있는 네이버가 단순 해프닝으로 넘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네이버도 시작은 스타트업이었다. 2000년대 인터넷 검색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된 덕에 지금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제 AI로 IT 업계는 또 다른 혁신과 발전의 기회를 맞았다. 국내 스타트업 중 ‘제2의 네이버’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최근 정부가 앞다퉈 AI 업계 지원에 나서는 이유도 그런 ‘숨은 보석’을 키워내기 위해서다.
네이버는 이 사안이 알려진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뤼튼의 광고 집행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수 과정에서 기계적으로 기준을 적용했다”는 설명을 되풀이할 뿐, 재발 방지책은 내놓지 않았다.
네이버의 스타트업 지원 조직 ‘D2SF’는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네이버가 현재까지 투자한 스타트업은 110곳이 넘는다. 이 가운데 44%가 AI·데이터 관련 스타트업이다. 네이버가 이번 광고 반려 사건과 관련한 납득할 만한 개선책을 내놓아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상생 정신이 무색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조민아 산업1부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