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전선 ‘옛 영광 회복’ 무리수?… 호반·LS 그룹 전면전 양상

입력 2025-03-14 00:35

전선업계 1·2위 LS전선과 대한전선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대한전선 대주주인 호반그룹이 LS그룹 지주사인 ㈜LS 지분 매입에 들어가면서 두 회사 간 분쟁이 그룹 간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양사 갈등엔 수조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의혹이 자리잡고 있지만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대한전선의 야심이 주된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13일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호반그룹은 최근 KB증권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LS 지분을 사들여 2% 후반대 지분율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지분율은 5% 미만으로 공시 의무가 없어 정확한 수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LS는 지난해 3분기 기준 비상장 자회사인 LS전선 지분을 92.3% 보유하고 있다. 호반그룹 측은 케이블 등 전력 사업 업황이 긍정적인 상황에서 미래 성장을 내다본 투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순 투자 목적’보다는 호반그룹이 자회사 간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지분을 매입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3% 지분 권한은 강력하다. 상법에 따르면 지분 3% 이상을 확보한 주주는 기업의 장부·서류 열람을 청구할 수 있다. 회계장부 열람·등사 청구는 회사 경영진에 대한 형사고소나 민사소송의 전제 절차로, 증거 수집에 활용되거나 경영권 분쟁 등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다. 임시 주주총회 소집권 등도 발동할 수 있다.

일각에선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 가능성도 제기된다. LS 오너 일가의 ㈜LS 지분율은 과반에 크게 못 미치는 32.1%로, 가치는 1조2500억원 수준이다.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인물은 구자은 회장으로 지분율이 3.63%이다. 나머지 지분은 자사주 15.1%, 국민연금 12.1%, 기타주주 40.7% 등이다. 기타주주들이 보유한 주식 40.7%를 모두 사들이는 데 드는 비용도 1조600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할 경우 주가가 뛰어 경영권 인수 비용 역시 올라갈 가능성이 크지만 자산 10조원 규모 호반그룹의 실탄은 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LS그룹 내부에선 호반의 지분 매입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호반이 LS 경영권을 살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며 추후 벌어질 기술 유출 사건의 소송전에 앞서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사 갈등을 촉발시킨 사건은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의혹이다. 지난해 6월 경찰은 LS전선의 고전압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혐의로 건축설계회사 가운종합건축사사무소를 압수수색했다. 가운건축은 20년 이상 LS전선의 케이블공장 건설을 담당한 업체다. 2008~2023년 LS전선 해저케이블 공장의 건축을 설계한 이 업체는 지난해 준공된 대한전선의 충남 당진 해저케이블 1공장 건설에도 참여했는데, 이 과정에서 LS전선의 해저케이블 제조 설비 도면 등이 대한전선에 유출됐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경찰은 압수물 분석을 마친 뒤 이르면 다음 달 피의자 조사를 벌일 것으로 전해졌다. LS전선은 기술 유출이 사실일 경우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설 계획이다.

해저케이블 시장 성장세가 가파른 점도 두 그룹이 이 사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려는 유럽의 해상풍력 발전 증가와 북미 해상풍력 산업 성장세 속에 해저케이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해저케이블 시장의 규모는 2023년 180억 달러에서 오는 2030년 481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두 회사는 6년째 특허 소송도 진행 중이다. LS전선은 대한전선의 버스덕트(건축물에 전기 에너지를 전달하는 장치)용 조인트 키트 제품이 자사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2019년 8월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이 소송은 LS전선이 승기를 잡은 상태다. 이날 특허법원 제24부(부장판사 우성엽)는 특허침해 항소심에서 “대한전선이 LS전선에 15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한전선이 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LS전선의 특허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2022년 9월 1심 재판부도 LS전선의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배상액이 1심(4억9623만원) 배상액의 3배 가까이 올랐다. 대한전선은 상고 가능성을 열어놨다.

‘업계 1위를 되찾겠다’는 호반그룹의 욕심이 판을 키우는 핵심 요소라는 지적이다. 국내 최초의 전선 기업인 대한전선은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부동의 선두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무리한 사업 확장을 시도하며 부진을 겪었다. 대표 기업인 대한제당의 유동성 위기가 겹치면서 구조조정을 겪었고 모그룹은 결국 해체됐다. 이후 사모펀드인 IMM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됐다. 반면 LS전선은 전선 경쟁력 강화에 집중했고 그 결과 지난 10년 동안 국내 전선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21년 호반산업이 IMM PE로부터 대한전선의 지분을 넘겨받으면서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호반산업이 대한전선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 그룹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어지면서 재무 안전성을 확보하게 된 대한전선은 점유율 격차를 줄이며 선두 탈환을 노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양쪽 모두 ‘나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의 양강 체제를 용인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온 것 같다”고 전했다.

임송수 황민혁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