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속 AI, 현실로 나온다… 구글 피지컬 AI 경쟁 참여

입력 2025-03-14 00:21
지난 4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5)’에 등장한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디짓’이 페기 존슨 최고경영자(CEO)의 음성 명령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애질리티 로보틱스가 제작한 이 로봇에는 구글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제미나이 2.0 AI’가 탑재됐다. 로이터연합뉴스

구글 딥마인드가 로봇을 가동하기 위한 두뇌 역할을 하는 ‘피지컬 인공지능(AI)’을 공개했다. 지금까지는 컴퓨터 프로그램 속에서만 기능했던 AI를 현실 세계로 끌어낸다는 계획이다. 구글이 지난 10년간 수차례 로봇 조직을 구조조정했던 패착을 딛고 글로벌 경쟁에서 패권을 쥘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구글은 12일(현지시간) 자사 주력 로봇에 탑재 계획인 AI 모델 ‘제미나이 로보틱스-ER’을 발표했다. 이 모델은 구글이 사용하는 제미나이 모델을 로봇 전용으로 개량한 프로그램이다.

새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복잡한 현실 속에서 AI가 작동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한 것이다. 기존 AI는 다양한 가상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거나 연산하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데는 한계를 가졌다. 중력·마찰력·돌발행동 등 지나치게 많은 물리적 변수가 존재하며 상호작용하는 탓이다. 카니슈카 라오 구글 딥마인드 엔지니어는 “우리의 세계는 매우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풍부하다”며 “범용 지능 로봇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1월 세계가전박람회(CES) 기조연설에서 “현재 피지컬 AI는 현실 세계에서 물건을 밀면, 던지면, 당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 예측하지 못한다”며 AI를 현실로 끌어오는 작업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했다.

결국 구글은 아무리 뛰어난 하드웨어를 가진 로봇을 개발해도 이를 움직일 강력한 두뇌가 없는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피지컬 AI 개발에 뛰어든 것이다. 구글이 이날 공개한 로봇 영상을 보면, 제미나이 로보틱스-ER이 탑재된 로봇은 단순히 연구자 지시에 따르는 것을 넘어 사람처럼 ‘유연하게’ 대응한다. 예를 들어 로봇에게 바나나를 바구니에 넣는 모습을 보여준 뒤 ‘바나나를 바구니에 넣어줘’라고 지시하면 바구니 위치를 아무리 바꿔도 해당 위치로 따라가 작업을 수행한다.

농구 장면을 학습한 적이 없는 로봇이 농구공을 골대에 넣는 장면도 공개됐다. 농구를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모르는 로봇이 ‘슈팅’의 개념을 이해하고 지시를 수행했다. 그 외 알파벳이 적힌 장난감 블록을 움직여 특정 단어를 만들어내거나, 지퍼를 여닫고 점심 도시락을 가방에 넣는 행동도 자연스럽게 해냈다.

구글이 피지컬 AI를 활용한 로봇 개발에 참전하며 글로벌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와 오픈AI는 로봇 개발에 나서고 있고, 테슬라는 이미 연내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장에 배치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레인보우로보틱스) LG전자(베어로보틱스) 등도 주요 로봇 기업을 인수해 개발을 진행 중이다.

다만 지난 10년간 이어져 온 구글의 ‘로봇 구조조정’ 역사는 넘어서야 할 산이다. 구글은 2013년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며 로봇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4년 뒤 소프트뱅크에 매각했다. 이후 로봇 개발 조직을 ‘구글X’로 통합했지만 2023년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업부가 해체됐다.

구글도 현 로봇 연구에 대해 “초기 단계”라고 인정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로봇공학은 AI의 발전을 현실 세계에서 시험할 수 있는 적합한 무대”라며 “향후 로봇들은 구글의 AI 모델을 활용해 즉석에서 변화를 감지하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