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하게 살고 있는 불가촉천민 억울한 죽음 밝힌 인터넷 신문
가족까지 협박하며 압박해도 꿋꿋하게 차별과 억압 고발해
언론도 이익 좇는 기업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목표 있어
가족까지 협박하며 압박해도 꿋꿋하게 차별과 억압 고발해
언론도 이익 좇는 기업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목표 있어
미나 코트왈은 인도의 저널리스트다. 2021년 인도 북부 비하르주에서 무크나약(Mooknayak)이라는 신문을 창간했다. ‘말 없는 자들의 대변인’이란 뜻이라고 한다. 카스트 계급의 바깥에 있는 불가촉천민, 달리트의 현실을 보도하는 매체다.
미나 코트왈은 달리트다. 2017년 영국 국영방송 BBC의 인도 지사에 기자로 입사했다. 그녀는 영문 번역 일을 맡았다. BBC엔 차별이 없으리라 기대했지만, 그녀에게 현장 취재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입사 동기들이 현장에서 활약할 때 미나는 사무실 한켠만 지키고 있었다. 우울증을 앓았다. 2019년 BBC와의 계약이 종료됐다. 회사는 처음부터 계약직이었다고 했지만 그녀의 뒤에서 동료들은 쉬쉬했다.
미나 코트왈은 기자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가 달리트 아이들을 구별해서 따로 앉히고, 물통을 만지지 못하게 하는 일을 취재했다. 달리트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싫어했고, 스스로 미래의 문을 닫았다. 그녀 혼자 취재해서 기사를 써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엑스 같은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억눌려 있던 달리트들이 그녀에게 ‘좋아요’와 하트, 후원금을 보냈다. 그녀는 전 재산 1782달러를 들여 온라인 매체 무크나약을 만들었다.
2021년 비 오는 날, 9살의 달리트 소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장소는 델리 남서부 낭갈 마을의 화장터. 힌두교 사제와 신도들은 소녀가 감전사했다고 주장하면서 바로 화장을 하려 했다. 소녀의 가족과 주민들이 달려가 물을 뿌리며 시신을 지켰다. 인도의 다른 방송과 신문이 외면하고 있을 때 미나는 매일 낭갈 마을을 찾아가 영상을 찍고 기사를 썼다. 수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뒤늦게 기성 매체도 보도하기 시작했다. 정치인들도 더는 못 본 체할 수 없었다. 주지사가 마을을 방문하고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다. 사제와 화장터 직원 3명이 집단 성폭행과 살해 혐의로 체포됐다. 무크나약의 이름이 인도 전역에 알려졌다.
무크나약은 달리트만 아니라 여성, 외국인, 비힌두교도인에 대한 인도 사회의 차별을 거침없이 보도했다. 창간 이듬해 거대 언론매체를 제치고 최우수 미디어로 뽑혀 상을 받았다. 무크나약의 활약이 외국에도 알려지면서 강연 초청이 잇따랐다.
명성은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다. 소셜미디어에 비방이 이어졌다. 무크나약과 미나 코트왈이 약자의 처지를 특권처럼 활용해 카스트 제도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 그녀의 집과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성희롱하고 가족을 협박하는 일까지 있었다.
미나 코트왈은 경찰에 신고하고 법원에 고소했다. 경찰은 3년이 지나도록 가해자를 찾지 못했다. 판사는 “경찰이 가해자를 찾을 수 없다”면서 고소를 취하하라고 종용했다. 그녀는 “내가 달리트가 아니었다면 범인을 금방 찾았을 것”이라며 수사를 계속 촉구하고 있다.
인도 인구는 14억3000만명. 이 중 달리트는 3억명 정도로 추산된다. 달리트 중 1억명은 하루 소득이 세계은행이 정한 빈곤선인 2달러15센트에 못 미친다. 인도 범죄기록국은 매일 10명의 달리트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2019년 공식 통계에서 밝혔다. 그나마 뉴스로 보도되는 사건은 피해자가 미성년자이거나 집단적인 성폭행과 살인이 일어나는 등 끔찍한 경우뿐이다. 옥스팜은 인도 주류 언론사의 편집국 간부 중에 달리트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보고했다.
무크나약은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상업 광고를 싣지 않는다. 독자의 후원과 취재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해외 언론재단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달리트만이 아니라 원주민, 기독교인, 모슬렘도 무크나약을 후원했다.
3명으로 시작한 기자는 한때 20명까지 늘었지만, 지난해 “미나 코트왈은 가짜 달리트”라는 비방이 다시 확산하면서 크라우드 펀딩이 중단됐다. 기자는 6명으로 줄었고 무크나약은 존폐의 갈림길에 몰려 있다. 미나 코트왈은 미국 하버드대 저널리즘스쿨의 니먼리포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목표는 조회수를 높이는 게 아니라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긴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론은 수익이 없으면 존재하기 어려운 영리 기업이다. 신문 구독, 텔레비전 시청률, 동영상 조회수가 영향력의 척도처럼 여겨진다. 무크나약과 미나 코트왈의 사례는 조회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준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