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은 25세의 나이로 1995년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인 메노티의 ‘무당’ 주역으로 깜짝 데뷔했다. 당시 박수길 국립오페라단장이 인천시립합창단에 단원 평가 위원으로 갔다가 신인 이아경을 발탁한 것이다. 이후 서울시합창단과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다 이탈리아 유학을 떠난 이아경은 한국인 최초의 벨리니 콩쿠르 단독 1위를 비롯해 메조소프라노로는 유례없는 6개 콩쿠르 석권 기록을 썼다.
소프라노와 알토 사이의 메조소프라노는 음역대가 넓은 편이다. 이아경의 경우 더욱 독보적이어서 드라마틱 소프라노를 권유받았을 정도로 고음을 내는가 하면 콘트랄토(여성이 최저 음역대로 노래할 수 있는 파트) 저음을 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중후한 보이스와 풍부한 감성은 그를 한국의 대표적 메조소프라노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아경(55)이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아 기념 콘서트를 준비 중이다. 이아경은 1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어느새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성악 하나만 보며 올곧게 걸어왔다고 자부한다”면서 “20주년 콘서트는 동료 성악가들과 축제처럼 치렀다면 이번 30주년 콘서트는 관객과 편안히 차 마시며 대화하는 듯한 시간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그의 음악적 행보는 남다른 부분이 있다. 그는 경남 창원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성악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지만, 음악과 관계없는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성악가가 되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이후 경희대 음대에 진학한 그는 수석 졸업에도 불구하고 유학 대신 취업을 선택했다. 어머니가 대학 4학년 때 돌아가신 데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오페라 연출가인 남편 이의주의 격려에 31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다.
“1999년 윤이상 오페라 ‘심청’의 뺑덕 역으로 출연할 때 조연출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됐는데요. 당시 주변에서 유학 권유가 많았는데, 남편 덕분에 용기를 얻어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서 콩쿠르 우승을 잇달아 할 수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많은 분의 도움 덕분에 성악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2004년 국립오페라단 ‘아이다’ 출연차 한국에 갔던 그는 얼마 뒤 완전한 귀국을 결정했다. 당시 독일 함부르크 극장의 전속 제안도 받았던 만큼 현지 에이전트나 남편의 반대가 컸다. 하지만 그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2005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2010년 모교인 경희대 교수로 임용돼 지금까지 제자들을 키워내고 있다. 현재 경희대 음대 학장인 그는 오페라와 콘서트 무대에도 꾸준히 서고 있다.
“제가 어릴 때 꿈이 간호사였는데요. 성악을 공부하면서도 스스로 위대한 성악가가 되기보다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간호사 같은 조력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것보다 한국으로 빨리 돌아가서 저처럼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한 학생들을 이끌어주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단순히 노래만 익히는 게 아니라 공연 기획, 홍보, 마케팅 등도 배워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데 도움이 되려고 합니다.”
오는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30주년 기념 콘서트는 ‘마이 웨이’(My Way)라는 제목 아래 사계절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이아경은 “인생은 사계절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한 번은 꼭 이 콘셉트로 공연을 하고 싶었다. 사계절에 빗대 봄은 성악을 처음 시작할 때, 여름은 내 음악이 무르익어갈 때, 가을은 내가 성숙해질 때, 겨울은 봄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새로운 다짐을 할 때 어울리는 노래들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아경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고 슈만 가곡집 음반에도 참여했던 피아니스트 김도석이 한 무대에 선다. 이아경은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중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팝송 ‘마이 웨이’ 등 다채로운 노래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