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엔화 가치 하락) 시대’가 저물고 원·엔 환율이 1000원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중순 원·엔 환율은 850원대까지 내려갔으나 최근 980원을 훌쩍 넘겼다. 일본의 기준금리가 또 오를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미국의 경기 침체가 우려되자 달러 수요가 엔화로 옮겨온 것으로 분석된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재정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100엔당 979.81원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해 말 934.24원에서 2개월 반 만에 4.9% 급등한 수치다. 원화 대비 엔화 가치는 지난해 7월 855원대까지 내려가며 ‘슈퍼 엔저’를 보였으나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며 1000원을 바라보고 있다.
엔화가 쌀 때 사뒀던 ‘엔테크’족들도 차익 실현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지난 11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엔화예금 잔액은 8883억엔으로 집계됐다. 엔화예금 잔액은 지난해 6월 말 1조2929억엔에 달했으나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최근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움직임에 급격한 엔화 강세가 나타나는 모습이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3월 기준금리를 17년 만에 올리며 마이너스 금리에서 벗어났다. 이후 같은 해 7월 0.25%로 인상한 데 이어 지난 1월 0.5%로 또 한차례 올리며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의 물가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시장은 일본은행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달 일본 총무성 발표에 따르면 지난 1월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같은 달보다 4.0% 상승했다. 2년 만의 4%대 상승률이다.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도 엔화 강세를 부추긴다. 달러 수요가 또 다른 안전자산인 엔화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속되는 관세 위협까지 더해지며 달러 가치는 엔화와 반대로 연일 하락 중이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이날 달러인덱스는 103.65로 지난달 말 107.61에서 3.7% 떨어졌다. 위재현 NH선물 연구원은 “반복되는 관세 번복이 시장에 피로감을 주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위험회피 심리는 완화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기대감 등으로 달러 가치가 소폭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