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연구소 밤에도 불 켠다… 특별연장근로 6개월로 확대

입력 2025-03-12 18:54 수정 2025-03-12 23:51
11일 경기 성남시 판교 동진쎄미켐 R&D센터에서 ‘반도체 연구개발 근로시간 개선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앞으로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은 좀 더 수월하게 주당 최장 64시간 근로가 가능해진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단위가 6개월로 확대되면서 1회만 연장하면 1년간 60시간 이상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도체 경쟁국들의 기업 연구소는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는데 한국만 ‘주52시간 굴레’에 갇혀 경쟁력을 잃어 간다는 경제계 우려를 정부가 수용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12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반도체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보완방안’을 공개했다. 핵심은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것이다. 특별연장근로는 불가피하게 주52시간 이상 근무해야 할 때 근로자 동의와 고용부 장관 인가를 받아 주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한 번 신청할 때 3개월 단위로 인가받고, 이후 3회까지 연장해 최장 1년간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다. 6개월 특례를 적용하면 한 번만 재심사를 받아도 ‘6개월+6개월’로 총 1년간 제도를 쓸 수 있다. 6개월 중 첫 3개월은 주 최대 64시간, 나머지 3개월은 주 최대 60시간으로 상한선을 뒀다.

근로자 건강검진도 강화한다. 현행 고용부 고시는 노동자의 요청이 있을 때만 건강검진을 하도록 규정하지만 6개월 인가를 받을 때는 제도 사용 기간에 건강검진을 의무 시행하도록 고시를 개정할 예정이다. 제도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온라인 신고센터도 운영한다. 고용부는 “인가 연장 재심사 기준은 완화하되 핵심 요건인 인가 사유와 인가 기간·시간, 건강보호 조치 등은 철저히 심사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에 주52시간 근로 예외를 적용하는 ‘반도체특별법’이 야당 반대로 사실상 무산되자 정부 차원에서 마련한 대안이다. 특별연장근로 기간은 법을 개정하지 않고 정부의 행정규칙만 바꾸면 변경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르면 다음 주 새 지침을 적용할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국가전략산업인 반도체산업을 살리려는 응급조치로 평가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언론 공지를 통해 “근원적으로는 주52시간 예외 조항이 포함된 반도체특별법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반도체산업의 연구개발·생산 활동이 더욱 유연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환영했다. 한국경제인협회도 “기술 혁신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반도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것이다. 사회적 합의 없이 편법으로 노동시간 연장을 추진하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전국삼성전자노조도 성명에서 “노동자 기본권을 희생하면서 단기적 성과만을 우선시하는 행태”라고 규탄했다. 근로자 동의가 쉽지 않고 준비 서류 등이 복잡해 지난해 연구개발 사유로 허가된 특별연장근로는 전체의 0.5% 수준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세종=박상은 기자, 이경원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