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싸우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기원전 776년 ‘올림픽 휴전’ 협정을 맺었다. 올림픽대회를 시작하며 각국 선수와 관중이 경기장까지 안전하게 오가도록 대회 전후 일정 기간 전쟁을 금했다. 스파르타가 이를 어겨 벌금을 물렸다는 기록을 제외하면 대체로 잘 지켜졌다고 한다. 역사학자들은 당시 경기가 열리던 올림피아 유적지에 요새화된 성벽이 없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든다.
중세 유럽에선 ‘하나님의 휴전’이라 불린 평화운동이 있었다. 1027년 가톨릭의 툴루스 공의회에서 선포된 이 휴전은 토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전투를 멈춰 주일을 지키는 것으로 시작해 각종 성일로 확대됐다. 하지만 1095년 교황의 1차 십자군 소집 이후 교회가 직접 전쟁에 뛰어들면서 유명무실해졌다.
1차 대전의 ‘크리스마스 휴전’은 전장의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싸움을 멈춘 거였다. 개전 5개월째인 1914년 12월 서부전선의 독일군 진지에서 크리스마스트리에 초를 밝히고 캐럴을 부르자 마주한 영국군 참호에서 호응하듯 캐럴이 터져 나오며 시작됐다. 전쟁 중이지만 함께 성탄절을 축하하는 트리와 캐럴이 전선을 따라 확산되면서 12월 24~26일 아무도 서명하지 않은 비공식 휴전이 이뤄졌다. 그렇게 총을 내려놓은 군인이 10만명이나 돼서 이듬해 크리스마스에는 양측 사령부가 ‘휴전 금지’ 명령을 내렸다.
2020년에는 유엔에서 ‘코로나 휴전’ 결의안이 채택됐다. 팬데믹 대응을 위해 90일간 지구촌의 모든 적대행위를 멈추자는 사무총장 제안에 172개국이 서명했다. 강제력이 없는 선언인데도 최종 합의에 석 달이 걸렸으니 휴전이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알 수 있다.
인류 전쟁사의 다양한 휴전에 우크라이나가 하나를 더할 듯하다. 미국의 ‘30일 휴전’ 제안에 동의했다. 트럼프의 압박에 떠밀린 선택인 데다 상대가 러시아여서 테이블에 앉기가 더 찜찜할 것 같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고대 ‘올림픽 휴전’을 부활시켜 적용해왔는데, 지금까지 이를 어긴 다섯 사례 중 넷이 러시아에 의해서였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