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마을에서 20년 넘게 살았습니다. 그동안 연탄은행 직원과 봉사자들 덕분에 참으로 따뜻한 겨울을 보냈습니다. 고맙다는 말 외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12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만난 92세 최영무 어르신의 목소리는 연신 떨렸다. 이날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은 백사마을 주민과 함께한 23년을 회고하며 추억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중 하나였다. 1960년대부터 도시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조성됐는데 옛 주소인 ‘산104번지’에서 유래해 백사마을로 불렸다.
지난해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15년 만에 관리처분인가가 통과되면서 재개발이 시작됐다. 백사마을 주민 다수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고 현재는 20여 가구만 남아 있다.
여든이 넘은 노영덕 어르신은 “연탄은행에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새로 정착한 의정부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며 “올해는 모두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축복하고 연탄은행 직원과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연탄은행은 2002년 백사마을에 서울연탄은행을 설립한 뒤 해마다 주민들의 겨울철 난방을 책임져 왔다. 이 마을에서만 누적기준 2만2413명이 무료급식과 비타민 목욕탕, 연탄 나눔의 도움을 받았고 449가구의 주거개선을 비롯해 3만4736가구에 쌀을 전했다.
허기복 목사는 “백사마을은 재개발로 사라지지만 우리 마음엔 영원한 고향으로 남을 것”이라며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겠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글·사진=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