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영화 감독은 ‘부캐’일뿐… 우리는 복음 전도자”

입력 2025-03-15 03:01
박수웅 미국 남가주휄로쉽교회 사역장로가 지난 2월 태국 현지 선교사를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영상제작회사 히드니스의 장세호 대표가 2023년 7월 교회 말레이시아 선교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김학청 목사가 1991~1996년 사역했던 파푸아뉴기니에서 현지인들과 기념 촬영하는 모습. 박성근 장로가 지난 1월 대구 중구 요셉성형외과에서 캄보디아 의사를 연수시킨 뒤 증명서를 주는 장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각자 제공, 그래픽=강소연

개그맨 이수지가 최근 ‘도치맘’이라는 부캐릭터(부캐)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강남 학군지 학부모를 패러디한 모습에 본캐릭터(본캐)를 잊어버릴 정도라는 반응이 쏟아진다. 본업 외의 능력이나 재능을 살려 부캐로 활약하는 건 비단 연예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세상을 살아감과 동시에 교회 공동체 안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겐 여러 역할을 넘나드는 일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들은 세상에서 돋보이는 직업과 명성은 자신의 부캐일 뿐, 본질적인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로 사역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평신도부터 목사까지, 신앙 안에서 맡은 소임을 감당하는 한편 세상 속에서 다양한 달란트를 성장시켜 열매 맺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알리는 ‘부캐 부자’ 크리스천들을 소개한다.

“의사 직업은 도구… 인생 후반, 예수처럼”

마취과 전문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가정사역자이자 코스타(KOSTA·국제복음주의 학생연합회) 인기 강사인 박수웅(81) 미국 남가주휄로쉽교회 사역장로는 ‘부캐 신드롬’의 원조 격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7일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평신도 사역자’라고 소개하며 “의사란 직업은 사역을 위한 일종의 도구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한말 고종황제의 어의였던 호러스 알렌 선교사처럼 의사로서 복음을 전하고자 우선순위를 정해 인생 계획을 세웠다”라고 부연했다.

실제 전남대 의대 졸업 후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턴을 한 그는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헨리포드병원, 헌팅턴비치병원에서 마취과 전문의로 일했다. 언어 장벽을 극복하고 전공 분야 경력을 꾸준히 쌓던 박 장로가 삶의 방향을 전환한 건 40세인 1984년부터다. 당시 출석 교회에서 장로 임직을 한 것도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

박 장로는 “인생에서 ‘의사 수업’은 여기까지다. 이제부터는 몸과 마음, 영혼을 치유한 예수처럼 복음을 전하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그해 병원을 그만뒀다. 대신 60세까지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미주 지역 유학생과 이민자 2세를 대상으로 무료 강연하는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이를 위해 시간을 쪼개 매일 성경을 연구했고 신학교도 다녔다.

그는 본캐와 부캐 활동으로 쌓은 연륜을 바탕으로 기독교인의 ‘인생 후반전 전략’을 전하는 게 향후 목표라고도 했다. 박 장로는 “성경에는 아브라함과 모세, 사도 바울과 요한 등 노년에 사명을 받은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며 “한국 사회와 교회의 주축이 될 70~90대 ‘액티브 시니어’에게 사명을 일깨우고 활력을 전하는 80대 사역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잘 나가는 의사요? “내 본캐는 크리스천”

박성근(63) 대구요셉성형외과 대표원장도 자신의 정체성을 신앙에서 찾는 의사다. 자신의 정체성을 ‘대구성덕교회 시무장로이자 선교사’라고 말하는 그에게 성형외과 의사로서 병원을 찾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의료선교와 교회 사역이다.

그는 최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교회 봉사하듯 최선을 다하는 것이 크리스천으로서 중요한 사역”이라면서 “교회든 직장이든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로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던 학창 시절부터 방학마다 학교 신우회 동문과 팀을 짜 농촌 의료봉사를 했다. 성형외과 전문의로서는 1995년 베트남에서 처음 해외 의료선교를 시작했다. 그는 “하룻길을 걸어 안면기형 수술이 필요한 아이를 안고 찾아온 어머니가 있었다”며 “일정상 수술이 어려웠는데 간절한 요청에 현지 보건팀과 협의해 마지막 날 수술을 진행했다. 그 일이 의료선교를 계속하게 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베트남을 비롯해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요르단 스리랑카 필리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몽골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의료선교를 펼치고 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대구지구 이사장, 대구극동방송 전파선교사위원장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성형외과는 단순히 외적인 변화를 넘어 정신외과의 역할도 한다”면서 “환자의 아픈 마음을 함께 나누고 하나님 안에서 위로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료선교를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역하다 찾은 은사… “스타트업 차렸네요”

영상 제작 스타트업 ‘히드니스’의 장세호(34) 대표는 크리스천으로서 교회 사역을 하다가 숨겨진 은사를 발견한 경우다. 그는 2019년 출석하는 교회에서 미디어팀을 신설하고, 청년부 목사를 주인공으로 영상 콘텐츠를 만들면서 영상 제작 분야에 대한 흥미와 재능을 찾았다. 이후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1년 전 지금의 회사를 차렸다.

장 대표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사도 바울이 텐트 메이커를 하며 사역했던 것처럼 저 역시 돈을 벌어서 복음을 전하는 데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며 “영상 일을 시작하면서 본캐와 부캐가 한 몸이 되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선교지를 촬영하거나 선교사가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는 일이 많아졌다. 장 대표는 “크리스천 영상은 세상에 졌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이지만,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험한 산지도 정복할 수 있다는 갈렙의 고백처럼 숨겨진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을 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영화감독·사진가… 목회자도 ‘부캐 부자’

은퇴 선교사이자 목회자인 김학청(64) 미국 맑은사랑선교재단 대표는 ‘영화 감독·제작자’라는 부캐를 갖게 됐다. 최근 서울 영등포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난 김 대표는 60세 때 담임목사에서 은퇴하면서 미디어선교 필요성을 느껴 크리스천 가치가 담긴 영화 제작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한국어 및 영어판으로 공개한 20분 길이의 단편 영화 ‘전망대의 진실’은 현재 여러 교회와 선교회 등에서 상영되고 있다. 김 대표는 “복음은 달라지지 않지만, 달라지는 시대에 맞춰 영화라는 새 옷을 입고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면서 “올여름엔 두 번째 영화 ‘너를 위해’를 공개할 예정이다. 언젠가는 장편 영화도 만들어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본캐는 선교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1985년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 목사로 안수를 받고 영국 미국 등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아 아내, 두 자녀와 함께 파푸아뉴기니에 성경 번역 선교사로 파송됐다. 원시 부족이 있는 곳에서 선교 사역을 마친 뒤 미국 남침례교 소속 목회자가 된 그는 현재까지도 멕시코 인도 라오스 등 선교지에서 교회개척과 제자훈련 등에 힘쓰고 있다.

목회자면서 다양한 역량을 발휘하는 ‘N잡러’ 목사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과거 ‘이중직’ 목사를 비판적으로 보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책 ‘동네아저씨’(서로북스) 저자 박병헌 봄꽃교회 목사는 사진을 찍고 카페를 운영하며 배달과 건물 청소 일도 하는 목회자다. 그는 책을 통해 목회와 함께 일상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하는 일들의 가치와 의미를 전한다.

심성훈 따뜻한말씀교회 목사는 주말엔 목회자, 주중엔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 따뜻한밥상(따밥) 10호점 사장님이 된다. 심 목사는 지난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따밥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돼 이번 달부터 매월 셋째 주 목요일마다 청년 50명분 찌개를 제공한다”면서 “앞으로도 영적인 밥과 육신의 밥을 먹이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조승현 김수연 신은정 기자, 용인=양민경 기자 cho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