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이 사태가 촉발한 국가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위기 극복에 나서야 할 정치권이 해법 모색은커녕 국회를 버리고 거리로 뛰쳐나가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으니 혀를 찰 노릇이다. 나라 안팎의 위기가 겹치면서 국가 경제는 침몰하고 서민 경제는 나락으로 빠지는데 권력 투쟁에만 몰입한 정치권의 행태는 주권자인 국민들을 좌절시키고 있다. 국가 위기를 초래한 책임에서는 여야 어느 쪽도 자유롭지 않다.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정치권이 이전투구만 한다면 주권자의 분노가 쓰나미처럼 밀어닥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어떤 수식어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가 도를 지나쳤다고 하더라도 군을 동원한 국회 무력화 시도가 허용될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결과적으로 야당의 줄탄핵과 예산 삭감보다 훨씬 이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비상계엄을 예방하지 못한 여당은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제도적 개선책을 제시해야 하는데도 윤 대통령 결사옹위에만 매달리면서 집권당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야당도 자숙해야 한다. 이 정부 들어 야당이 발의한 공직자 탄핵안은 29건에 달했는데 이 중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한 13건의 탄핵소추안 중 헌법재판소가 파면한 공직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그럼에도 이 대표의 민주당은 심우정 검찰총장까지 탄핵하겠다고 나섰다. 12·3 내란 특별수사본부를 총괄 지휘하고 있는 심 총장을 탄핵하면 이 나라 최고 수사기관마저 마비되는 것인데 이를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탄핵소추만으로도 직무가 정지되는 효과를 노린 정치 탄핵이지만 탄핵 중독증에 빠진 야당의 횡포는 개탄스럽다. 최근 몇 차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보다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히려 높게 나타난 현상에는 힘자랑을 자제하지 못하는 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중도층이 많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야당은 알아야 한다.
수사기관과 사법기관도 자성해야 한다.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의 실체적·절차적 정당성 결여를 추궁하려면 수사와 재판, 탄핵심판의 절차적 정당성에도 흠결이 없어야 한다. 비상계엄이 위헌·위법이라고 해서 사법적 책임을 묻는 절차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