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공학 분야 전문가로 승승장구하던 때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분명했다. 더 많은 이들이 인체공학 기술을 통해 더 편안하고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국내를 넘어 개발도상국에까지 그런 선한 영향력을 끼치겠다는 포부도 있었다. 한동대 교수 출신인 이원섭(42) 컴포랩스 대표는 최근 경기도 성남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이 건강을 넘어 행복을 누릴 수 있길 바라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승승장구 교수가 창업한 까닭
이 대표는 2023년 11월 대한인간공학회 신진인간공학자상을 받았다. 매년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40세 이하 인간공학자 1명에게만 주어지는 상이다. 모교인 한동대에서도 정보통신기술(ICT·Information Communications Technology) 창업학부에서 6년간 인간공학을 가르치며 교수로도 자리를 잡아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4월 그는 인체공학 분야 스타트업이라는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창업한 지 1년 남짓 된 컴포랩스는 인체공학을 바탕으로 신체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이터 기업이다. 인체공학 공유 플랫폼 ‘사이즈랩’을 통해 한국인과 미국·유럽인 등 3D 인체 분석 데이터 5만건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기술표준원 산하 기관인 사이즈코리아의 인체 데이터를 분석해 기업 등이 제품을 설계하는 데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가공한 것들이다. 올해 정부 데이터바우처 지원 사업 공급기업으로 선정됐다.
이 대표는 “교수로서 학생을 지도하는 일에도 보람을 느꼈지만, 인체공학의 가치를 세상에 더 알리고 확산하고 싶었다”며 “지나고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제 인생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사용하시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한동대에 입학해 산업공학 디자인을 공부한 것,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 연구원으로 공군 조종사 산소마스크 개발 등에 참여하며 인체측정학 등 연구 활동을 하게 됐던 것, 이후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3년간 산업 디자인 공학 연구원으로 있으며 생활비를 위해 프로젝트를 따냈던 경험이 그렇다. 인체공학 관련 국제 학술 논문 20여건, 발명자로 함께 등록된 특허 15여건, 기업 제품 개발에 20여번 참여한 것도 창업의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인체공학 통해 하나님 닮아가고파”
이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미적으로 뛰어난 제품을 구상하는 것보다 사용자를 고려한 인간 중심적인 설계에 더 관심을 뒀다. “인체공학적 설계는 안전과 직결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나 제품은 불편할 뿐만 아니라 근골격계질환을 유발하고, 종국엔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 등에서는 인체공학에 소외되는 이들이 많을 수 있기에 이 분야의 필요성과 가치를 알리고 싶다는 바람이 더 크다. 이 대표는 “누구나 편하고 안전할 권리를 컴포랩스를 통해 실현하고 싶다”고 했다.
컴포랩스의 초기 사명은 N810이었다. 느헤미야 8장 10절에서 따왔다. 이후 ‘인체의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살려 이름을 변경했을 뿐, 이 대표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성일임을 선포하고 기쁨과 당당함으로 힘있게 도전하며 이웃을 위해 가장 좋은 것들을 나누자’는 목표다. 그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선한 제품과 선한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지, 소외된 이웃을 돌아볼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말했다.
개발도상국서 불평등 줄이려면…
컴포랩스는 국내를 넘어 개발도상국에까지 인체공학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는 미래를 꿈꾼다. 건강과 안전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플랫폼 사이즈랩을 설계할 때 해외 각국의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그래서다. 그는 “인체공학은 기술 격차와 불평등을 줄이는 일과도 직결된다”라며 “또 인간공학이 바탕이 되었다고 제품이나 서비스가 다 비싸지는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새롭게 확장하려는 영역은 데이터 수집과 확보 분야다. 데이터를 많이 보유해야 가공도 잘할 수 있다. 소비자가 직접 체형이나 건강 데이터를 측정하고 건강을 지키면서 기업도 이를 쓸 수 있도록 연결하고 분석하는 B2C 형태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대학 강단에 서면서 창업을 꿈꾸는 수많은 크리스천 학생들을 만났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타인이 처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려는 이들이었다. 이 대표는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아이디어가 없으면 머리 아픈 일도 없고 열정이 없으면 마음 상할 일도 없다(No Idea, No Headache. No Passion, No Heartbreak)’는 격려를 자주 했다”며 “힘든 일과 갈등 속에서 고민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에 집중하길 바랐다”고 했다.
냉혹한 스타트업에 발 디딘 것을 후회한 적은 없을까. 이 대표는 “부담이나 불안감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긴장이나 염려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지금까지 저를 통해 해오신 일, 또 앞으로 하실 일을 믿고 묵묵히 걸어가고 싶다”고 부연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