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서 노는 걸 계획 짜주고 돈을 벌어?” “강아지 옷만 만들어주는 디자이너가 있다고?” 2005년 중앙고용정보원(현 한국고용정보원)이 ‘신생 이색 직업 50선’을 소개했을 때 대중이 보인 반응이다. 이제는 일상 속 익숙한 직업군이 된 파티 플래너, 애견 옷 디자이너, 푸드 스타일리스트 등의 역사다. 개인적으론 ‘세상에 이런 직업 가진 사람도 있네’에 머물던 내게 ‘이런 직업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다’로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사건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5년. 한 편의 영화는 또 하나의 물음을 던졌다. 영화가 던진 질문은 ‘죽는 게 직업이 될 수 있는가’였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에는 익스펜더블(Expendable)이란 직업을 가진 주인공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가 등장한다. 이름에 담긴 의미부터 ‘소모품’인 이 직업을 묘사하는 과정은 기이하면서도 처절하다. 시대적 배경은 2050년대 어느 날. 거액의 빚을 떠안고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게 된 미키는 직무에 대한 정확한 내용도 숙지하지 못한 채 익스펜더블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 알고 보니 외계행성 개척 과정에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으면 신체가 3D 프린터로 다시 생성되고, 기억은 저장된 데이터를 통해 그대로 이식돼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역할이다.
영화는 죽음과 생성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열일곱 번째 버전으로 살아가던 미키17이 얼음행성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변곡점을 맞는다. 미키17이 크레바스 사이로 추락해 죽은 줄 알고 미키18을 생성시켰지만 미키17이 우여곡절 끝에 살아 돌아온 것이다. 문제는 법적 규제에 따라 동일한 신체가 공존하는 ‘멀티플’ 상황에선 존재 자체가 삭제돼야 한다는 것. 두 미키 중 하나가 죽어야 다른 하나가 살 수 있는 상황에 처하면서 영화는 죽음과 존재의 본질, 비인간적 자본주의, 실종되는 인간성을 섬세하게 펼쳐 보인다. 그러면서 ‘죽음도 직업이 될 수 있을까’로 시작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게 한다.
그중 하나는 ‘만약 죽음이 더 이상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면, 신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단순히 공상과학적 상상이 아니라 현대 과학과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될 철학적 딜레마이기도 하다.
기독교 신앙에서 죽음은 인간의 유한성을 의미하며 동시에 신을 향한 믿음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언젠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기에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며 신을 찾는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인간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면 신앙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이 지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오히려 생명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한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음을 강조하며(창세기 1:27), 인간의 생명은 단순한 육체적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곧 신의 존재와 신앙을 부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없는 이유다.
영화는 인간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비인간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넘어 사랑과 연대가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미키는 사랑하는 나샤(나오미 애키)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삶을 버리지 않고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며, 봉준호 감독은 이를 통해 인간성이란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 여부가 아니라 정신적 세계를 나눌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우리네 현실에서도 익스펜더블은 이미 존재한다. 발전을 거듭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사회 구성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만, 쉽게 대체 가능하다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는 특정 계층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우리는 또 다시 질문할 수 있다. 세상을 바꿔놓을 만한 변화가 다가올 때 인간은 무엇부터 지켜야 할까.
최기영 미션탐사부 차장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