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친트럼프 언론의 트럼프 비판

입력 2025-03-13 00:38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수 매체다. 지난 대선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다. 하지만 트럼프 관세에 대해서는 강력한 비판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많은 미국 언론이 비판에 나섰지만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이라고 한 WSJ 사설이 단연 돋보였다.

이 사설은 트럼프 대통령을 격노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WSJ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은 상식에 대한 이념의 승리”라며 “대통령께서 곧 정신을 차리시길 바란다”는 칼럼으로 응수했다. 그 후로도 “관세는 세금이다” “트럼프가 택한 가장 어리석은 관세발 주가 폭락” “트럼프발 경기침체가 올까” 등 연일 관세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타블로이드판 대중 신문 뉴욕포스트도 유명한 친트럼프 매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적극 지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종종 뉴욕포스트에 단독 인터뷰를 허락하곤 한다.

그런 뉴욕포스트가 트럼프 대통령의 친러시아 정책에 반기를 들어 미국 미디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뉴욕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르자 1면에 커다란 글씨로 “푸틴이 독재자”라고 적었다. 이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10가지 진실’이라는 칼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한 것은 푸틴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에 병합되지 않도록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우방이 아니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헛되지 않다” 등이 진실이라고 알렸다. 이 칼럼은 “평화가 명백한 진실을 부정하면서 악에 무릎 꿇는 것이라면 그(트럼프 대통령)는 존경받지 못할 것이다. 역사의 판단은 더욱 가혹할 것이다”라는 준엄한 경고로 마무리된다.

친트럼프 매체라면 폭스뉴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폭스 내각’ ‘폭스 정부’라고 불릴 정도로 폭스 출신들을 많이 기용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을 비롯해 팸 본디 법무장관, 마이크 허커비 주이스라엘 대사 등 폭스뉴스에서 진행자나 해설자로 일하다 정부 요직에 임명된 인사가 10명이 넘는다. 트럼프 행정부와 거의 한 몸처럼 얽혀 있는 폭스뉴스지만 지난 2월 백악관이 ‘멕시코만’의 명칭을 ‘미국만’으로 고친 정부 지침에 따르지 않겠다고 밝힌 AP통신에 대해 출입과 취재를 금지시키자 분명하게 반대했다. 백악관기자협회가 작성한 “언론사는 정부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편집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항의 서한에 40개 매체가 서명했는데, 여기에 폭스뉴스가 참여한 것이다.

정치의 양극화가 극심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유불리가 모든 정치적 사안에서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된 듯한 세상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친트럼프 언론들이 트럼프 정책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누구를 지지하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이 선을 긋고 지키는 것이야말로 언론의 역할인지 모른다. 지지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비판은 때론 가장 치열한 지지가 될 수 있다.

갈등과 충격으로 점철된 윤석열정부를 통과하면서 한국 언론은 선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계엄령에 대해서, 극우에 대해서, 부정선거론에 대해서, 그보다 앞서 대통령의 부인에 대해서, ‘바이든-날리면’ 논란에 대해서.

김남중 국제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