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J D 밴스와 20세기의 종말

입력 2025-03-13 00:34

무너진 러스트벨트 백인 정서
철저히 대변하는 밴스 부통령

민주주의 보편 가치 내던지고
기존 세계질서 뿌리부터 부정

미국의 경제주권 되찾겠다는
새 세력의 리더, 그를 주목하라

“유럽의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위협입니다. 유럽은 미국과 공유하던 근본 가치에서 후퇴하고 있습니다.” 2025년 2월 14일 뮌헨안보회의에서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놀라운 주장은 계속된다. “유럽 전역에서 언론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습니다.” “현재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우리 미국은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유럽 ‘친구’들은 침묵 속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치즘과 파시즘 옹호 발언에 대한 방화벽은 그동안 유럽의 합의사항이었다. 발언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금기의 영역이다. 밴스 부통령은 극우 파시즘이나 소위 극단적 주장에 대한 금기가 언론 자유에 위배되며, 이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향하는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과거, 유럽의 참혹한 역사를 그가 알고 있기나 하는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많았다.

그의 발언은 유럽과 미국이 전통적으로 공유했던 가치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확인해줬다. 더 나아가 대공황기에 형성되고 2차대전 후 확립돼 80년 가까이 지속되던 20세기 전후 질서가 이제는 완전히 무너졌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밴스 부통령은 미국과 유럽이 그동안 옹호했던 민주주의, 인권, 법치에 기반한 보편적 가치가 대안진실에 의해 다시 판단될 필요가 있으며, 국제통화기금(IMF)과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으로 대표되는 미국 주도의 규칙 기반 자유주의 경제 질서도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고 천명한 셈이다. 이어서 총선이 열흘도 남지 않는 독일에서 극우 독일대안당(AfD)의 당수를 만나 주류화에 목마른 이 정당에 힘을 실어줬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밴스 부통령은 2주일 뒤 백악관에서 실시간 생중계되었던 그 유명한 트럼프·젤렌스키 언쟁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허락받지 않고 논쟁에 뛰어들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몰아세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무려 38세 차이 나는 40세 갓 넘은 젊은 부통령, 불과 2년의 상원의원 경력이 주요 정치 이력의 전부인 그는 앞으로 쌓아올릴 정치 이력과는 상관없이 미국에서 새로운 세력을 상징하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밴스, 그는 누구인가.

‘힐빌리의 노래’로 알려진 베스트셀러와 영화가 세상에 나온 지 몇 년이 지났다. 애팔래치아산맥 인근 러스트벨트 출신,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 저학력 백인은 잊혀진 사람들이었다.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으나 존재감이 없었던 사람들, 눈부신 기술 진보와 세계화 시대를 맞아 속절 없이 무너져 직장을 잃고 가정이 해체되고 알코올과 마약, 죽음으로 이어지는 절망의 터널 속에 있던 사람들을 알린 것은 그의 책 ‘힐빌리의 노래’였다. 러스트벨트를 소환했던 억만장자 정치인 트럼프와의 접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가 과거 트럼프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결국 트럼프의 품으로 들어가는 여정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으리라.

그의 사상은 트럼프주의에만 머물고 있지는 않다. 열렬한 히틀러 지지자였으며, 전후에도 나치즘을 끝까지 고수해 학계로 돌아가지 못한 독일의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 그리고 유럽사, 특히 19세기 혁명의 시대 프랑스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던 가톨릭 전통주의는 그의 사고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정치란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행위라는 슈미트의 주장을 이어받아 브라만 좌파, 자유주의 엘리트, 공화당 내 신자유주의자들과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고, 법치보다는 행정적 결단력을 중시하고, 강한 지도자를 추구하며, 보호무역과 국내 제조업 활성화를 통해 미국의 경제주권을 찾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세속적 자유주의와 맞서 가톨릭적 사회 질서를 강조하는 기독교 전통주의야말로 미국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보고 있다.

20세기는 어떠했는가. 전후 45년 동안 지속되었던 공산주의와의 대결, 냉전이 몰락하고 이어진 30여 년 동안의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광풍이 지나간 그 자리에는 이제 더 이상 자유주의와 규칙 기반 질서를 중시하는 20세기 가치는 설자리를 잃었다. 밴스는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경향을 21세기의 지배적 질서로 만들고자 하는 세력을 대표한다. 그를 주목하라.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