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목사의 복음과 삶] 부드러운 사람이 이긴다

입력 2025-03-13 03:05

세상은 전쟁터와 같다. 전선은 늘 치열하다. 주도권 싸움이다. 힘과 힘의 충돌이 벌어진다. 밀고 밀리는 전쟁이다. 세상은 힘자랑을 하는 곳이다. 누가 더 힘이 센가에 귀추가 주목된다. 강자들의 세상이다. 슈퍼스타, 셀럽뿐 아니라 모두가 더 높아지고자 사투를 벌인다. 내 힘이 부족하면 연대를 하기도 한다.

세상은 거칠고 잔인하다. 긴장감이 돈다. 싸워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권력의 메커니즘만 배웠기 때문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사는 세상은 살벌하다. 예수의 가르침은 전혀 반대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긴장과 대립의 세상 속에서 온유는 낯설다. 온유함으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온유함은 약함과 다르다. 비겁함과도 다르다. 온유한 자는 내적으로 강인하다. 자신을 제어할 줄 안다. 내적 통제 기능이 강해야 온유할 수 있다. 힘을 자랑하는 사람은 센 사람이 아니다. 힘을 자랑할수록 내면은 두려움에 떤다. 인류 역사를 보면 답이 나온다. 힘이 부족해 망하는 것이 아니라 넘쳐서 망했다. 대개는 자멸이다.

힘이 주어졌을 때 고도의 절제력 속에서 다뤄야 한다. 인간은 힘을 가지면 절제력을 잃어버리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인간에게 권력은 어울리지 않는다. 온유한 사람이 진짜 강자이다. 성경 속에서 최고의 리더십을 보인 사람은 모세다. 그는 히브리인 200만을 이끌었다. 장정만 60만이다. 그들은 모두 거친 노예 출신이다. 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을 뻔하기도 했다. 광야 40년을 이끌어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성경은 온유함이라고 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 그가 온유하지 않았다면 백성들과 매일 부딪혔을 것이다. 모세는 다듬어지지 않은 그들과 지내면서 온유함을 드러냈다. 40년, 짧은 세월이 아니다. 비밀은 온유함이다. 온유는 예수님의 리더십 핵심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마 11:29)

온유함은 생존 현장에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치열한 세상 속에서 겸손과 온유함으로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예수님이 사셨던 현실은 복잡했다. 주변에 살의로 가득한 적대자들이 많았다. 바리새인들은 늘 모함하고 약점을 잡아내고 공격했다. 그럼에도 예수는 날을 갈지 않으셨다. 칼을 쓰려는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 하셨다.

예수는 힘으로 상대하지 않으셨다. 조직화하거나 사람의 수를 모으려 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는 세상적 방식과 전혀 다르게 활동하셨다. 그는 힘을 주기보다 힘을 빼는 방식을 선택하셨다. 예수는 절대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지만 도리어 힘을 완전히 해체하셨다. 바로 십자가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는 무기력하고 무능한 실패자의 모습이다.

로마의 권력자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야합이 만들어낸 완승처럼 보였다. 그러나 십자가의 승리로 드러난다. 십자가는 비밀이다. 세상은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다. 바보짓처럼 보이지만 가장 지혜로운 길이다. 온유한 사람은 부딪히지 않는다. 상대가 강할수록 더 부드럽게 대한다. 상대가 거칠게 말을 할지라도 지혜로운 말로 노를 그치게 만들 줄 안다.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다.”(잠 25:15)

상대가 세게 나온다고 같이 세게 나가면 강한 것이 아니라 약한 자다. 자기를 제어하지 않으면 부딪힌다. 온유한 사람은 언제나 동일한 모습을 드러낸다. 내적 평온함과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온유한 사람은 반대자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안다. 온유는 적대적 환경에서 빛을 발한다. 강성 대응을 하지 않는다. 강요하거나 윽박지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태도를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기다려준다. 성급할수록 힘을 주려고 한다. 폭력을 띤 권력은 실패한다. 힘으로 상황을 바꾸려고 하면 실패한다. 온유와 겸손은 쉽지 않다. 자연적 본성에서 나올 수 없다. 세상이 이토록 요란한 이유이기도 하다. 분노와 폭력이 넘치는 세상이다. 신기하다. 2000년 전 힘을 완전히 뺀, 무기력하게 보였던 그 예수의 십자가 아래,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복종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힘은 무엇일까.

이규현 부산 수영로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