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부산시장은 사회학자 출신의 정치인으로 합리적 보수의 대표주자이자 브레인으로 불린다. 현재의 제6공화국에 대해 ‘87년 체제’라는 개념을 처음 선보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1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비상계엄 이후의 혼란에 대해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갈등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며 듀 프로세스(Due process), 즉 적법절차의 원칙이 실종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박 시장은 “우리나라가 리더십 위기를 반복적으로 겪고 있다”며 “권력을 공화의 원칙에 따라서 운영하는 합작형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담=모규엽 사회2부장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이 이어지면서 나라가 혼란스럽다. 이에 대한 견해는.
“제일 중요한 게 보수·진보정권 모두 리더십 위기를 반복적으로 겪고 있다.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서 나온 공화는 권력을 공적으로 쓴다. 권력자가 주인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은 권력자는 항상 주민에게 설명할 책임, 즉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를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권력자가 권력을 제한적으로 써야 한다. 사적으로 남용하면 안 된다. 이런 원칙들이 있다. 여기에 우리가 한번도 충실해 본 적이 없다. (국민과 정치인 모두) 대통령을 왕으로 생각한다. 한쪽에선 왕을 없앤다는 생각에 분노하는 거고, 다른 쪽에선 왕을 없애야 왕이 될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리해서 완장 찬 권력처럼 내란 프레임을 씌워 한꺼번에 보내려고 하다가 이런 사달을 낸 것이다. 돌이켜보면 공화의 정신에 충실한 리더십을 우리가 갖질 못했고, 만들지 못했다는 반성을 여야가 함께 해야한다. 합작형(Collaborative) 리더십이 필요하다. 권력을 공유하는 기반을 넓게 할수록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강한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으로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로널드 레이건을 뽑을 수 있다. 권력을 공화의 원칙에 따라서 운영하는 그런 리더십을 만들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의 정국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이는가.
“계엄 이후 지금까지 여러 가지 걱정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한 일종의 타협과 합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민주주의 장점이 있는데, 그런 장점보다는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갈등이 오히려 확대 재생산되는 이런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합리성을 상당히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사안에 대해 평가를 하거나 의견을 얘기할 때도 굉장히 조심스러워진다. 국민들의 정치적인 인식이 합리적인 판단과 집단적·감정적인 요소들이 엉켜있다. 그런데 합리적인 영역들이 더 확대돼야 하는데 감정적인 영역이 훨씬 더 확대되는 측면이 있다. 계엄은 나도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그런 만큼 한국 민주주의가 회복력을 보여주려면 그 뒤에 과정에서 듀 프로세스를 잘 밟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그 뒤에 우리가 보여준 과정은 이 국면을 그냥 낙인찍고 바로 끝내려고 하는 흐름에 휩싸여 듀 프로세스가 훼손된 상태다. 그런 부분들이 앞으로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조금 이 상황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고. 또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적법절차 과정이라고 하는 그런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탄핵 심판 결과도 결국 그 점(적법절차 과정)이 제일 쟁점이 될 것이다. 내란죄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했다. 그런데 내란죄를 빼 버리고 계엄의 위법 요소만 가지고 조각을 한다고 하면 그건 여러가지 문제를 낳는다. 그러니까 국회 소추 과정 자체가 문제였다는 반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에서 보듯 수사 과정의 적법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 헌재는 수사 기록을 받아본다고 했다. 잘못된 수사 기록을 받아보고 판단하면 문제를 낳는다. 내가 보기에는 인용이냐 기각이냐 문제보다는 인용이냐 각하냐로 논점이 생길 소지가 굉장히 크다. 더불어민주당이 국정조사 등을 거치고 탄핵소추를 한 게 아니고 내란죄로 규정을 해놓고 거기에 맞춰서 탄핵소추가 진행됐다. 그런데 헌재 가서는 내란죄 프레임은 싹 없애고 무조건 잘못했으니까 파면해야 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절차적인 정당성이나 적법절차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헌법학자들도,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분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는 분들이 많다. 탄핵 심판이 과연 밖에서 예상하는 것만큼 깔끔하게 빠른 시일 내에 될 거냐에 대해선 의문을 가지고 있다.”
-대학교수 시절 ‘87년 체제’라는 개념을 처음 선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 87년 체제의 폐해와 극복 방법, 어떤 식으로 개헌이 필요한 지 이야기해 달라.
“87년 체제는 자유·민주·공화의 정신에 부합하는 헌법을 거의 완성된 형태로 가져왔던 체제다. 그런데 흠이 뭐냐면 그전에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그냥 어정쩡하게 결정했다. 5년 단임제라는 게 그 뒤에는 집권한 쪽은 너무 짧고, 집권을 못한 쪽은 집권한 쪽의 실패만 바라는 정치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어떤 상황에서 정치 양극화가 극단적 분열의 단초를 마련했다. 또 그런 과정에서 의회 권력은 민주화 효과로 강하게 설정돼 있는데 대통령 권력도 강하게 설정돼 있다. 여소야대 국면에선 행정부의 독재와 입법부의 독재가 함께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열어놓은 헌법이다. 개헌을 살펴보면 우리 국민들이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우리 안보 상황에도 맞기 때문에 내각제로 바꾸는 것은 국민적 동의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4년 중임제로 하되 책임총리와 국회 다수당이 국정 운영에 대해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가야한다. 중앙 권력 구조의 분권적 체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크다보니 지방의 힘이 약하고 중앙정부 중심의 모든 규제가 지금 민간의 활력을 도모하는 데 상당히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 분권을 이번에 굉장히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쪽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 하나 더 얘기하면 시행 시기는 현재의 대선 후보, 정당의 이해관계를 좀 넘어서서 좀 뒤로 미루는 게 좋을 것 같다. 2026년, 2028년, 2030년에 맞추든지 하면 된다. 다만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같이하고 총선을 중간에 두는 형태가 제일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금은 보수의 위기라고 다들 이야기한다.
“국민의힘이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전신 정당부터 어떻게 성찰해야 하고 그걸 통해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대안을 제시하려고 늘 노력했다. 이번 문제는 국민의힘 집권 정당에서 만들었다. 계엄이라는 형태로 엄청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이 기회에 보수와 국민의힘이 자기 스스로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또 어떤 리더십을 지향해야 하는지도 필요하다. 이념적 수준에서부터 비전이나 전략, 정책이 일관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위기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담론과 거기에 걸 맞는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민주당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민주당의 이념이 뭔지 잘 모르겠다. 사실 굉장히 섞여있다. 국민의힘은 대한민국 현대사 과정에서 얼룩도 있지만 대한민국 헌법에 나오는 얘기를 기본 이념으로 삼아놓고 하는 정당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민주당은 80년대 이후 운동권의 이념화 과정에서 막 뒤섞여 버렸다. 그래서 이게 과연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정당인지, 미국식의 리버럴 정당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급진적인 좌파 정당인지 명확히 자기 이념으로 구축이 안 된 상태에서 여러 이념적 색깔과 여러 정치적 지향을 갖는 세력들이 막 뒤섞여 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중도보수라고 하고, 주사파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금도 명확한 기준이 서 있지 않으니 국제관계에서도 계속 왔다갔다 한다. 이번 국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계엄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새로 들어올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보수 진영을 휘감고 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도 더 여론이 팽팽히 굴러가고 있다. 민주당도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그때그때 표를 얻기 위해 잠시 화장을 하는 형태의 정책을 내놓지 말아야 한다. 일례로 민주당은 복지는 복지대로 다하고 기본소득을 나눠주자고 한다. 그러니 ‘엔비디아를 세워 지분 30%를 국민에게 분배하자’는 엉뚱한 발상까지 나온다.”
-앞으로 할 일에 대해 말해달라.
“서울만 가지고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순 없다. 남부권을 또 하나의 성장축으로 만들고, 부산을 허브도시로 확실히 만들어야 한다. 일부는 실현이 되고 있고 일부는 아직도 여러가지 기득권과 구조적인 벽에 막혀서 쉽게 진행이 못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부산을 싱가포르나 두바이, 홍콩, 로테르담 이런 정도 수준의 도시로, 국제 비즈니스 도시로, 국제 글로벌 문화관광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청년들이 부산을 떠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청년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남부권에 살아도 자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확신이 들 것이다. 이것을 하면 대한민국 전체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김용헌 기자 y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