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의 고장’ 강원도 고성… 꽃피는 춘삼월에 만난 은빛 ‘겨울왕국’

입력 2025-03-13 00:01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백두대간 마산봉 등산로에서 내려다본 흘리 마을이 하얀 눈 이불을 덮은 채 폐장된 리조트 건물과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그 뒤에는 오른쪽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이 설국을 이루고 있다.

경칩(驚蟄)이 지났지만 강원도는 여전히 ‘겨울왕국’이다. 지난해 12월 이후 50일가량 건조특보가 이어졌던 강원도 영동 지역에 3월 들어 ‘눈 폭탄’이 쏟아졌다. 강원도 고성군 향로봉에는 50㎝ 이상의 폭설이 내렸고 인근 진부령(해발 520m) 등에도 많은 눈이 쌓여 ‘하얀 설국’을 빚어냈다.

조선시대 진부령에는 공직자들이 이용하는 ‘진부원(陣富院)’이란 숙소가 있었다. 한양에서 금강산을 오가는 길목에서 하룻밤 묵고 가도록 했을 것이다. 요즘 진부령에는 ‘백두대간 진부령’ 표지석이 우뚝 서 있다. ‘백두대간 종주 기념 공원’에는 산악인들의 종주 기념 흔적들이 빼곡하다.

진부령이 있는 고성군 간성읍 흘리는 예로부터 눈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곳에 1976년 대관령의 용평리조트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알프스 스키장’이 개장했다. 1979년 2월 24일 국내 최북단 ‘알프스 스키장’에서 제60회 전국체육대회 동계스키대회가 열렸다. 적설량과 설질이 좋아 한때 스키어가 붐볐던 스키장은 2006년 경영 악화로 문을 닫은 채 적막하게 남아 있다.

흘리 마을 뒤에 마산봉(해발 1052m)이 자리 잡고 있다. 백두대간 남한 구간 종착지 겸 출발지이자 고성8경 중 설경으로 이름난 곳이다.

마산봉 기슭에 만들어진 설동 안에서 내다본 풍경.

마산봉이라는 이름은 산정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말등 같다 해서 붙여졌다.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마산봉은 순백의 춘설을 뒤집어쓰고 봉긋 솟아 있다. 폐쇄된 리조트 인근에 마산봉 들머리가 있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9㎞. 가파른 구간이 많아 두 시간 정도 발품을 팔아야 만날 수 있다.

초입부터 난관이다. 폭설이 내린 지 얼마 안 돼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길이다. 더구나 아무도 올라간 흔적이 없어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하니 힘은 훨씬 많이 든다. 하지만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은빛 세상으로 빠져든다. 장대 같은 나무들이 새하얀 눈밭과 어우러진져 한 폭의 수묵화를 펼쳐놓는다.

얼마 오르지 않아 설동(雪洞)을 만난다. 삽 등으로 주변의 눈을 모아 눈 동산을 만든 뒤 내부를 파내 완성한 동굴이다. 얼음으로 만드는 이글루와 비슷한 모양새다. 따뜻하고 포근해 겨울 설산에서 부득이한 상황에 처했을 때 긴급 야영 시 사용된다.

흘리 마을에서 올려다본 마산봉(왼쪽)과 병풍바위.

등산로를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눈 덮인 나무 뒤로 흰 이불을 덮고 잠자는 것 같은 흘리 일대가 그림처럼 드러난다. 이국적인 리조트 건물과 그 뒤로 이어지는 긴 능선의 설경이 장관이다.

마산봉 정상에는 뾰족바위가 전망대 역할을 한다. 백두대간 칠절봉과 둥글봉, 향로봉 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능선 맨 오른쪽 뒤로 금강산이 아득하다. 마산봉 안내판에는 ‘금강산 일만이천봉 가운데 하나로 설경이 뛰어나 건봉사, 천학정, 화진포, 청간정 등과 함께 고성8경에 속한다. 남한 쪽 백두대간 북단에 위치해 아름다운 백두대간 경관을 이루고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풍광은 병풍바위가 한 수 위다. 정상에서는 안 보이던 설악산을 눈에 담을 수 있어서다. 병풍바위를 지난 백두대간 능선은 대간령(大間嶺·641m)에서 잠시 고도를 낮춘 뒤 신선봉에서 다시 1204m까지 끌어올린다.

대간령은 대관령(해발 832m)과 헛갈리기 십상이다. 대간령은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라는 뜻에서 ‘샛령’ ‘새이령’이라고도 불리고, 조선시대 지리지에는 ‘소파령(所坡嶺)’ ‘석파령(石破嶺)’으로 기록돼 있다.

신선봉은 금강산 일만이천봉 중 마지막 봉우리다. 해발 고도로 따지면 더 높은 상봉(1244m)이 있지만 명성을 신선봉에 넘겨주고 외로이 솟아 있다. 백두대간은 대간령에서 신선봉과 상봉을 지나 미시령으로 이어진다.

미시령 인근에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솟아 있다. ‘아주 먼 옛날 금강산에서 바위 경연 대회가 열릴 때 울산에서부터 올라오던 중 설악산에서 쉬다가 바위 경연 대회가 열리는 날까지 금강산으로 가지 못하고 설악산에 눌러앉게 됐다’는 전설을 지닌 그 바위다.

울산바위는 고성군과 속초시의 경계를 이룬다. 미시령 터널 쪽 울산바위는 고성군에 속한다. 해발 873m, 둘레 4㎞에 이르는 근육질 바위가 힘찬 기운을 뿜어내며 위용을 자랑한다. 거대한 왕관처럼 솟은 거친 바위는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입체감을 더한다.

여행메모
봄철 산불조심기간 마산봉까지 등산
도치·삼세기·막국수·편육… 고성 별미

흰 눈을 머리에 이고 병풍처럼 펼쳐진 울산바위.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진부령으로 자가용을 이용해 가려면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나들목에서 빠지는 것이 가깝다. 44번 국도로 가다가 46번 국도로 갈아타고 용대리에서 진부령으로 향하면 된다.

폐업한 알프스 스키장 정문을 지나 흘2리 방향으로 350m쯤 더 가면 오른쪽에 넓은 '마산봉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하고 알프스 스키장 방향으로 170m쯤 가면 마산봉 등산로 입구 이정표가 있다.

마산봉에서 병풍바위 지나 대간령까지는 원래 산행 가능하지만 봄철 산불조심기간(1월 24일~5월 15일)에는 통제 중이다. 백두대간 능선인 대간령에서 신선봉·상봉을 지나 미시령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비법정 탐방로다. 겨울 설산 산행에는 아이젠과 스패츠가 필수다.

죽왕면 가진항에 활어회센터가 있다. 삼숙이(삼세기)·잡어 매운탕과 물회가 인기다. 고성 특미인 도치 알탕과 두루치기, 아귀·명태찜도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다. 동치미 또는 육수가 특별한 고성식 막국수와 편육도 별미다.



고성(강원도)=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