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들었다 놨다… 美 ‘관세 폭격’, 몇발 더 남았다

입력 2025-03-13 00: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요 교역국의 ‘비관세 장벽’에 대해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글로벌 경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2026년 북중미월드컵 공인구를 들고 있는 모습에 지구본을 합성했다. AP연합뉴스, 게티이미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예고한 ‘상호 관세’ 방침이 초읽기에 들어선 가운데 관세 부과 명분으로 제시한 ‘비관세 장벽’에 정부와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상호 관세는 교역 상대국이 더 높은 관세를 매길 경우, 동일한 수준의 관세로 맞대응하는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미국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타국의 ‘비관세 장벽’에도 관세 부과로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미국을 상대로 한 불공정 무역 관행을 교정하겠다는 주장이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불공정 관행을 교정하면 관세가 내려가고, 불공정 관행을 지속하면 관세가 올라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상 비관세 장벽은 해외 농축수산물이나 식음표 등의 수입을 줄이거나 막기 위한 검역 정책·안전 표준 등의 의미로 통용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지목한 비관세 장벽은 한국을 비롯해 세계 170여개국이 운영 중인 부가가치세(부가세)부터 반도체 산업 등에 대한 국가 보조금, 다국적 기업에 대한 과세, 자국 화폐 가치를 낮추는 환율 정책 등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한국은 비관세 장벽이 높다고 보긴 어려운 국가”라면서도 “트럼프 2기가 통상과 관련해 문제 삼을 수 있는 부분은 모두 걸고넘어지겠다는 입장이라 우려스럽다”고 진단한다.

부가가치세가 왜?

트럼프 대통령의 비관세 장벽 언급 중 눈길을 끈 부분은 부가세에 대한 지적이다. 사실상 세계 각국의 부가세 제도를 ‘수입 관세’로 간주하겠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부가세 대신 주별로 6.6% 수준의 판매세를 최종 소비자가 낸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10%, 유럽연합(EU)은 15~27%의 부가세를 부과하고 있다.

부가세를 운영하는 국가들은 미국에 수출하며 부가세를 환급받고 상대적으로 낮은 판매세를 미국 현지에 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환급금을 ‘보조금’으로 지목하며 문제 삼고 있다. 미국산 제품은 타국에서 10% 이상의 부가세를 지불하는 반면, 타국 상품은 미국에 수출할 때 부가세를 모두 환급받고 평균 6.6%의 판매세만 부담하고 있다는 논리다. 부가세 환급 제도의 주요 타깃은 중국과 멕시코 및 EU 국가들이 우선 거론된다. 일본과 한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도 대상에 검토되고 있다.

이에 각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소비세인 부가세 특성을 왜곡하고 있다”는 반발이 나온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미국 상호관세에 관한 질의응답’ 보도자료를 통해 “부가세는 수입품과 EU 생산품에 동일하게 부과된다”며 “부가세는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3조가 체결된 1947년 이래 (78년 간) 허용된 내국세이자 비차별적 세금”이라고 주장했다. 자국 생산품과 수입품에 동일하게 부가세가 부과되는 만큼 미국 상품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가세와 더불어 각국 정부의 산업 보조금 규모에 따라서도 상호관세를 매긴다는 방침이다. 현재 중국은 글로벌 이차전지 기업인 CATL에 8억1000만 달러(약 1조2000억원),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기업인 BOE에 4억2000만 달러(6000억원) 상당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일본도 첨단산업에 6조엔(약 59조원) 규모의 보조금 등을 쏟아 붓고 있다. 한국도 반도체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K칩스법’이 지난달 제정됐지만, 상대적으로 중국, 일본, 유럽 국가보다는 낮은 상황이다. 그러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에 대한 세액공제 등의 혜택이 관세 부과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글로벌 최저한세’ 딜레마

이른바 구글세로 불리는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세계 각국의 ‘디지털세’(필라1) 부과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디지털세는 고정 사업장이 없는 다국적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해 매출이 발생한 국가가 세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제도다. 디지털세의 또다른 형태인 글로벌 최저한세(필라2) 제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칼질 대상에 올라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도로 143개국이 합의해 만들어진 글로벌 최저한세는 전 세계 매출액이 7억5000만 유로(약 1조1000억원) 이상인 다국적 기업이 대상이다. 특정 국가에서 최저한세율(15%)보다 낮은 실효세율을 적용받으면 다른 나라에 추가 과세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구글의 미국 법인세 실효세율이 15% 미만이면 한국이 구글코리아에 추가 과세가 가능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 기업에 차별적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에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상태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국내 기업에도 적용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각각 4300억원과 10억원 규모의 글로벌 최저한세 부담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한국도 지난해부터 글로벌 최저한세가 시행돼 내년 6월 첫 신고를 앞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다른 국가 대비 과세권만 줄어들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비관세장벽에 대한 트럼프 2기 정책의 윤곽은 다음 달 초 발표될 미 무역대표부(USTR)의 국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한국 등 국가의 위생·검역 정책부터 각종 조세, 보조금 정책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윤정현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검역 등 국내 비관세장벽은 모두 법률에 기반해 운영된다”며 “의도적으로 미국 수입을 제한하는 것이 없다는 점을 미국에 잘 소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