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평생 공부하는 존재
독학 대신 스승·동료 필요해
기대 많은 늦깎이 대학생활
독학 대신 스승·동료 필요해
기대 많은 늦깎이 대학생활
새 학기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 밤이었다. “아빠, 내일 3학년이 된다니 긴장돼서 잠이 안 와.” 평소라면 어서 자라고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초등학생 아들에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도 긴장돼서 잠이 안 와.” 웬만하면 내 말에 콧방귀를 뀌는 아들이지만 요번에는 수긍해줬다. “하긴, 아빠도 그렇겠다. 3학년이 되니까.” 그렇다. 나야말로 잠이 안 왔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올해, 나는 대학생 3학년이 됐으니. 그러니까 95학번인 내가, 30년 후인 2025년에 다시 대학생이 됐다. 한 대학의 불문과 3학년으로 편입한 것이다.
데뷔하기 전에는 소설가란 바이오리듬이 좋은 어느 날, 햇빛과 함께 신이 은총처럼 내려준 영감을 받아,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자판을 마구 두드려, 말 그대로 ‘뚝딱’ 소설 한 권을 써내는 존재라 여겼다. 사실 스탕달은 장장 900쪽 넘는 ‘파르마의 수도원’을 52일 만에, 잭 케루악은 640여쪽에 달하는 ‘길 위에서’를 3주 만에 썼으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천재에게만 유효한 신화다. 나 같은 범인에게는 어림도 없다. 따라서 평생 자전적 소설을 쓸 요량이 아니었기에, 소설가는 결국 평생 공부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재능도 부족했고, 무지한 세계에 관해 쓰려면 공부를 친구로 여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데뷔 초에는 캐릭터 구현과 인물의 감정표현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소설을 읽으며, 일본어를 함께 공부했다. 그 후에는 서사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위시한 중남미 소설을 읽으며, 스페인어를 학습했다. 또 후에는 역사가 결국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양사를 살펴봤다.
이렇게 10여년을 보낸 뒤 내 소설의 부족함을 깨달았으니, 그것은 바로 ‘우아함’이었다. 그리하여 작년부터는 프랑스 소설을 읽으며 불어도 공부했다. 이렇게 긴 세월 독학하다, 문제점을 깨달았다. 독학은 결국 하고픈 공부만 하는 것이었고, 이는 지식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웠다. 중년의 외로움은 여전히 부족한 나를 이끌어줄 스승이 없고, 같은 길을 걷는 동료가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었다. 하나, 불어 실력이 대학원생 수준에 이르지 못했고, 학기 중에 짬짬이 일도 해야 했기에 대학원생이 아닌 학부생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외로움은 덜었느냐고? 첫 수업에 가니 강의실 문밖으로 학생들의 수다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와중에 내가 들어가니, 침묵이 강의실을 덮쳤다(‘앗, 강사 왔다’).
그리고 내가 교수 자리가 아닌 학생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한 유치환 시인의 ‘깃발’ 속 시어를 비로소 이해했다. 이번에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강의실을 덮친 것이다(‘어! 어! 저 아저씨가 왜 학생 자리에 앉는 거지?’ 이토록 삶은 불가해하다는 것을 학생들은 나의 실존으로 터득했으리라).
불문과는 한 학년에 9명밖에 안 되는 조촐한 분위기였다. 따라서 전공 수업에서 교수님은 학생들을 편하게 호칭했다. 교수님은 출석부를 보고 무심코 “민석이?” 하고 불렀다가 내가 손을 들자 “어머! 죄송해요!”라며 사과하는 촌극도 빚어졌다.
게다가 내가 모르는 채 어디선가 개강 총회가 열렸다는 풍문마저 들었다. 하지만 어떠랴. 이마저 좋다. 15년가량 책을 홀로 펼치고, 답이 없는 고민을 해본 사람은 누군가 같은 책을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여전히 이 세상에, 한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모르니 말이다.
아, 3학년이 된 탓에 잠이 안 온다는 아들은 어찌 됐냐고? 녀석은 일찌감치 적응을 마쳤고, 이제는 늦잠까지 쿨쿨 잔다. 반면 나는 학업 중에도 마감을 지키기 위해 새벽부터 이 글을 두 시간째 고치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오전 8시 반. 서둘러야 한다! 첫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최민석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