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이 절대 1500만원 이상은 안 된다고 했어요.” 법원 조정실에서 멀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신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실 상대방과 의견 차이가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은 1600만원을 받으면 합의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 공평하게 1550만원으로 합의를 보시면 어떨까요? 사모님도 그 정도는 이해하실 것 같은데요.” 내가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중년 신사는 여전히 고개를 젓는다.
“1501만원도 안 되나요?” “안 됩니다.” “아이고, 알겠어요. 그럼 다시 자리를 바꿔서 한 번 더 상대방과 말씀을 나눠 볼게요.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여러 번의 설득에도 완강하게 나오자 중년 신사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변호사도 난감한 눈치다. 내심 적정선에서 합의를 봤으면 하는 것 같았다. 변호사가 중년 신사와 함께 조정실 문밖으로 나가고 뒤이어 상대방이 같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님, 저분이 계속 사모님이 절대 안 된다고 했다고 1600만원으로는 못 하겠다고 하는데 어쩌지요? 1501만원도 안 된대요. 하하.”
“네? 저도 1600만원 아래로는 집사람한테 허락을 못 받았는데요?”
아니,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사모님이 힘이 센 것 같다. 이쯤 되니 집안 경제권을 꽉 잡고 있는 다른 집 사모님들이 부러울 지경이다.
“사장님, 1500만원 받는 걸로 하시면 오늘 100% 소송 끝내고 집에서 두 발 뻗고 주무실 수 있어요. 하지만 만약 1600만원 받는 걸 꼭 원하시면 저희가 조정 결정을 보내드릴 수밖에 없는데, 그럼 저분이 이의신청 할 가능성이 절반 이상으로 보이거든요. 이렇게 되면 계속 재판을 해야 돼요.”
“그래요? 뭐, 그럼 제가 집사람한테 혼나는 걸로 하고 1500만원으로 조정해 주시지요.” 다행히 상대방이 호기롭게 양보했다. 기쁜 마음으로 중년 신사와 변호사를 조정실로 불렀다.
“선생님, 이분이 사모님한테 혼나기로 하고 1500만원에 합의 보시겠대요.”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중년 신사는 조금 놀라는 표정으로 “그래요?”라고 말했다. 조금 떨떠름한 표정인 것 같기도 했다.
“언제까지 주시는 걸로 할까요? 통상의 경우에 따라 두 달 뒤로 정하면 어떨까요.” “안 됩니다. 두 달 뒤라면 집사람이 외국에 가 있어서 계좌이체가 안 되거든요. 차라리 한 달 뒤로 해주세요.”
“아유, 미리 받아두셨다가 두 달 뒤에 이체하시면 될 텐데요…. 그런데 한 달 뒤라면 상대방도 빨리 받으실 수 있으니까 더 좋겠네요.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사모님 허락 없이는 계좌이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니, 왠지 100만원이나 손해 본 상대방의 표정이 이긴 사람처럼 의기양양해 보인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때로는 양보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법이다.
최종 의사결정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했으니 절대 응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도 협상에서 나름 유용한 전략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근거나 명분도 없이 무조건 자기 입장만을 고수하다가는 나중에 더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100만원 때문에 조정을 거부했다가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더 많은 변호사 비용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협상은 양보와 타협의 과정이다. 상호 이익을 위한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얻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그나저나 어려운 경제사정에 돈 나올 구석이 없으니 합의를 주선하는 조정위원 입장도 쉽지 않다. 전국에 계신 사모님들에게 조금은 남편 돈줄을 풀어 달라고 호소하고 싶은 심정이다.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