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으로 상품권 ‘깡’하고 아파트 구매… 공익법인 324곳 적발

입력 2025-03-11 00:20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공익법인 A법인은 상품권 업계에서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고 있다. 법인 신용카드로 사들이는 상품권이 수십억원어치여서다. 다만 이렇게 산 상품권은 설립 취지에 무색하게 쓰였다. 상품권을 다시 팔아 현금으로 바꾼 뒤 이를 법인 이사장의 개인계좌로 보낸 것이다. A법인 이사장은 귀금속점에서 고가의 상품을 사면서도 법인카드를 제 것처럼 긁은 행위도 적발됐다. 이 법인은 공익 목적으로 기부받은 임야를 3년 넘게 방치하며 증여세를 탈루한 혐의도 받고 있다. 국세청은 A법인과 이사장에게 각각 수억원의 증여세를 추징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공익법인의 세법상 의무 위반 여부를 검증한 결과 지난해 A법인 등 324개 법인을 적발해 증여세 등 250억원을 추징했다고 10일 밝혔다.

공익법인을 이용한 우회적 증여 사례도 여럿 적발됐다. B법인은 기부받은 재산으로 수억원대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구매했으나, 이를 공익 목적이 아닌 고액 기부자에게 무상으로 임대하여 사실상 법인을 통한 부동산 편법 소유의 구조를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세정 당국은 이를 편법적인 증여로 판단하고 있다.

공익법인의 직원을 가사도우미 겸 집사로 부당하게 활용한 사례도 적발됐다. C법인은 출연자를 위해 직원을 채용해 출연자의 가사일과 특수관계인 소유의 토지 관리 업무를 수행하게 했으며, 이 과정에서 사용된 차량의 주유비는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법인 명의 업무용 차량을 공익법인이 운영하는 학교 총장의 자녀가 무상으로 사용한 일도 드러났다. 세정 당국은 C법인에 법인세 수천만원 등을 추징할 예정이다.

이밖에 출연자의 집안이 이사장직을 세습하는 학교법인, 근무하지 않은 전 이사장(출연자의 증손자)에게 매월 1000만원 이상, 수년간 억대의 허위 급여를 지급한 법인도 덜미가 잡혔다. 한 대기업 산하 문화재단은 계열사인 건설업체가 아파트 주민시설에 제공할 수억원 상당의 도서를 기부 명목으로 대신 제공했다.

이번 국세청 검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추징액은 상속·증여세법상 의무 위반(236억9000만원)이다. 공익자금의 우회 증여(9억8000만원)와 사적 유용(3억3000만원)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국세청은 “공익법인은 종교, 교육, 의료 등 공익 목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때 증여세 면제 등 세제 혜택을 받지만 이를 악용한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불성실 공익법인에 대해 앞으로도 엄정한 대응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