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대 자동차시장 가운데 현지 생산량이 내수 판매량보다 적은 국가는 미국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내수시장 규모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완성차업체를 상대로 ‘관세 엄포’를 놓는 배경엔 이 같은 생산·내수 불균형이 자리한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10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해 자동차 생산량은 1056만1234대였다. 중국(3128만2000대)에 이어 2위다. 일본, 인도, 독일이 3~5위를 차지했다. 생산량 톱5 국가는 내수 판매량 상위 5개국과 명단이 일치한다. 완성차업체들이 운송비 등을 절약하기 위해 수요가 있는 곳으로 생산을 몰고 있다는 의미다.
생산량 상위 10개국 중 중국·일본·인도·독일·멕시코·한국·브라질·스페인·태국 등 9개국은 생산량이 내수 수요를 한참 웃돈다. 단 한 곳, 미국만 현지 생산량이 내수 판매량(지난해 기준 1595만7427대)보다 500만대 이상 모자라다. 미국 현지 생산 물량 중 200만~300만대는 해외에 수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수의 절반을 수입차로 충당하는 셈이다. 지난해 미국 자동차 내수 판매는 전년 대비 2.2% 증가한 반면 생산은 0.7% 줄어 생산·내수 불균형 격차는 더 확대했다.
이런 현상은 1960년 전후에 시작했고 70년대를 지나며 심화했다. 오일쇼크, 일본·독일차 공습, 고비용 인건비, 백인 유출, 제조업 기피 현상 등이 한꺼번에 겹친 탓에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였던 미국 디트로이트가 쇠퇴하면서다. 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KAMA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무역 불균형은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관세 정책의 배경이 되고 있다”며 “미국의 관세 정책은 완성차 기업을 포함한 국내 제조 기업의 해외 생산과 투자 확대를 가속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는 지난 4일(현지시간) 멕시코·캐나다산 제품에 관세 25%를 부과하면서 “그들(자동차회사)이 해야 할 것은 자동차 공장 같은 것들을 미국 내에 짓는 것”이라고 경고했다가 다음 날 자동차에 한해 시행을 한 달 유예했다.
트럼프가 관세 부과 국가로 지목한 멕시코는 지난해 생산량 420만2644대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5%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넘어섰다. 트럼프 관세 폭탄의 또 다른 타깃인 중국도 지난해 생산량을 전년 대비 3.7% 늘리며 압도적 격차로 1위를 유지했다.
한국 상황은 좋지 않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내수시장이 전년 대비 6.5% 쪼그라드는 바람에 생산량 순위도 6위에서 7위로 하락했다. KAMA는 “국내 생산 규모를 유지·확대하려면 미래차 생산·설비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친환경차 보급을 늘리기 위한 내수 진작책이 필요하다”며 “국내 생산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국내생산촉진세제’(가칭) 도입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