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자회사 감사로 드러난 산은 ‘모럴 해저드’

입력 2025-03-11 02:23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KDBI, 현 산은인베스트먼트)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최근 감사원 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200쪽이 넘는 감사 보고서 속 기재된 산은 자회사는 ‘관리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KDBI는 지난 2019년 6월 산은의 기업 구조조정을 전담할 자회사로 출범했다. 산은이 700억원을 투자했다. KDBI가 구조조정 업무를 맡고, 산은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혁신 금융으로 무게추를 옮기겠다는 이동걸 당시 산은 회장의 의지가 담긴 결정이었다.

그러나 설립 당시부터 ‘왜 만드냐’는 말이 많았다. 산은이 출자한 관리 대상 기업들을 자회사가 인수하는 게 맞느냐는 적정성 논란부터 산업계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대기업 구조조정 역할을 10여명의 직원으로 이뤄진 집단에 이관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독립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말만 분리지 산은과 KDBI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이 전 회장도 이를 의식한 듯 수차례 독립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설립 6년이 돼가는 지금 감사원 결과에서 드러난 건 처음의 구호와는 정반대였다. KDBI는 설립 이후 계속해서 산은 퇴직자를 대표이사로 채용했다. 실장급 직원 4명을 모두 특별 채용했는데, 이 중 3명은 산은 출신이었고 다른 1명도 KDBI 설립 필요성을 주장한 용역보고서 작성자였다.

근태도 엉망이었다. 감사원이 2021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KDBI 직원 12명의 근태를 점검했더니 이 가운데 6명이 총 23일을 무단결근했다. 평일에 골프장을 이용한 경우는 48차례였고, 그중 실장급 직원은 회사가 소유한 골프장 VIP 회원권(20억원 상당)으로 배우자 및 자녀와 함께 골프를 쳤다가 적발됐다.

대표이사 등 간부들은 업무용 차량을 주말과 휴일에도 사용하면서 유류비와 대리운전비를 포함해 2696만원을 회사에 청구했다. KDBI에는 업무용 차량을 휴일에 사적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규정조차 없었다.

더욱이 KDBI는 대우건설 매각 과정에서 모기업인 산은이 1조원이 넘는 공적자금 손실을 입었음에도 매각에 성공했다는 이유로 750억원의 성공 보수를 챙겼다.

상황이 이럼에도 산은은 KDBI 설립 이후 2023년 말까지 단 한 차례도 감사를 하지 않았다. 산은이 말한 독립성이 방만 경영 방치를 의미한 건 아닐 테다. 낙하산 전관예우도 아닐 것이다. 6년 전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이러려고 만들었나. 산은은 쇄신으로 답해야 할 때다.

황인호 경제부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