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 찡한 모녀 이야기에 로맨스 한스푼 ‘폭싹 속았수다’

입력 2025-03-11 01:51
‘폭싹 속았수다’에서 아이유는 어린 시절 애순과 애순의 딸 금명으로 1인 2역을 한다. 이 드라마에서 모녀의 서사가 중요한 축인 만큼 아이유의 1인 2역 연기는 극의 흐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넷플릭스 제공

“열여덟 엄마는 엄마를 잃고 엄마가 됐고, 열아홉 아빠는 금메달 대신 금명이 아부지가 됐다. 그들의 봄은 꿈을 꾸는 계절이 아니라 꿈을 꺾는 계절이었다. 그렇게도 기꺼이.”

지난 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가 주말 사이 많은 시청자의 코끝을 찡하게 하며 호평받고 있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똑 부러진 반항아 애순(아이유)과 그의 곁에서 묵묵히 디딤돌이 돼주는 무쇠 관식(박보검)의 60여년 여정에서 봄이라 말할 수 있는 청소년기를 그린 네 편(1부)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각자의 꿈을 꺾고 부모가 될 채비를 한 이들의 봄을 그린 1부는 시청자에게 뭉클함을 줬다.

1960년대 제주에서 시작해 1990년대 서울까지 이어지는 애순과 관식의 서사에 유일한 빌런은 시대다. 능력 있고 똑똑한 애순은 학교에서 100점을 받아와도 ‘여자가 대학 가서 뭐하냐’는 소릴 듣고, 집안이 어려워지자 살림에 보탬이 되라며 공장에 취직하란 압박을 받는다. 애순은 가까스로 관식과 결혼하지만, 아들이 없다고 구박받는다.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는 딸인 금명이 살림 밑천이란 이유로 해녀를 시키려 한다. 애순의 봄은 이런 시대적 압박으로부터 자신과 금명을 지켜내는 계절이었다. 관식은 늘 그 옆에서 애순에게 힘이 되어준다.

드라마는 애순을 향한 관식의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로 흐뭇함을 유발하지만, 이야기의 핵심 메시지는 애순을 중심으로 한 모녀의 코끝 찡한 서사에 있다. 어린 애순과 그의 엄마 광례(염혜란), 그리고 중년이 된 애순(문소리)과 그의 딸 금명(아이유)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결국은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은 많은 여성 시청자의 공감을 자아냈다. “엄마가 가난한 거지 니가 가난한 거 아니야. 쫄아붙지마. 니는 푸지게 살아”란 광례의 말에 이들의 서사가 함축돼있다.

실제 같은 배경 묘사와 주·조연 배우들의 호연은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애순과 관식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아이유와 박보검 외에도 수많은 조연이 빈틈없는 연기로 현실성을 더했다. 특히 1화에만 출연한 염혜란은 제주로 피란 와 억척스럽게 해녀 일을 하며 애순을 키우는 엄마의 일생을 절절하게 연기해 주목받았다.

‘폭싹 속았수다’의 또 다른 볼거리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생생한 배경이다.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고, 부녀자 가출 방지 기간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나붙은 거리,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를 내세운 정부 캠페인이 송출되는 1960~70년대의 모습은 그 시절을 살았던 시청자에게는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헤어질 결심’ ‘아가씨’의 류성희 미술감독은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공간 안에 담아냈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 ‘시그널’ 등에서 김원석 감독과 합을 맞춘 박성일 음악감독은 서사를 품은 음악으로 그 시대의 정서를 전달했다.

한국의 시대상을 담아 글로벌 시장에서의 반응은 미지수였던 ‘폭싹 속았수다’는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순위를 집계하는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폭싹 속았수다’는 9일 기준 넷플릭스 글로벌 TV쇼 부문 6위에 올랐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