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다시 자유민주주의

입력 2025-03-11 00:38 수정 2025-03-11 00:38

2024년 12월 3일 밤 전혀 다른 입장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말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겠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몇십 분 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반드시 위법·위헌적인 비상계엄을 막아내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구시대 유물로 알았던 비상계엄을 44년 만에 되살렸고, 여당 대표는 이 비상계엄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맞선 것이다. 양측 모두 “국민과 함께”을 내걸었다.

자유민주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원리 위에 민주주의가 결합한 정치적 시스템을 말한다. 국민주권, 법치주의, 삼권분립, 대의민주주의, 보통선거권, 복수정당제, 사유재산권, 경제적 자유 등을 기본 요소로 한다.

이런 점에서 12·3 비상계엄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는 포고령 1호만 봐도 자유민주주의와 배치된다. 스스로 자유민주주의 신념 하나는 확고히 가지고 살아왔다는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며 그와 본질적으로 상극인 비상계엄을 꺼냈다는 건 자기부정인 것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이 오염 내지 편향됐거나, 혹은 이를 다른 목적 달성을 위한 구실로 삼았을 가능성을 뜻한다. 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의 인식 틀에 머물러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유신체제로 들어가는 이유를 자유민주주의에서 찾았었다.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건전하고 알차게 그리고 능률적인 것으로 육성, 발전시켜야겠다는 나의 확고한 신념을 밝혀두고자 한다.”(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특별선언)

윤석열정부는 반운동권 세력의 집권이었다. 그리고 운동권 문화의 테두리 안에 여전히 다수가 포진한 더불어민주당은 과거처럼 반정부 투쟁을 하듯 현 정권에 맞섰다. 각종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며 정권 교체에 본인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이재명 대표의 존재도 민주당의 노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여소야대 지형에서 임기를 시작한 윤 대통령은 줄곧 정치적 열세를 면치 못했다. 정해진 임기는 흘러가는데 공언했던 개혁의 성과는 요원하고, 야당은 국무위원 ‘줄탄핵’과 쉴 새 없는 특검법 공세, 일방적인 예산 삭감으로 목을 조여 왔다. 조급함은 어느 순간부터 ‘다수의 폭정’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바뀌었고, 이는 야당 인사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확신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의 충돌이 절정으로 치달은 끝에 극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폭발한 것이 비상계엄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비상계엄을 꺼내는 순간 윤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는 실패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설득과 타협의 과정이 필요하고, 부득이하게 다른 이의 자유를 제한하려 할 때는 반드시 법치의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치적 반대편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며 군대를 국회에, 선관위에 투입하는 건 결코 자유민주주의의 방식이 아닌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후 벌어진 자신에 대한 체포와 구속, 탄핵심판 역시 자유민주주의라는 탈을 쓰고 대응했다. 그러나 사회 전체를 분열로 내몰면서 최종의견을 진술하는 순간까지 보수 강성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모습은 오히려 반공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선동 정치에 가까워 보였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며 자유민주주의도 시험대에 올랐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살고 있는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허약한 것 아닌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나갈 것인가. 이제 많은 국민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윤 대통령 파면 여부와 별개로 자유민주주의의 회복과 치유, 쪼개진 사회의 통합을 찾는 일은 계엄 이후 시대의 절대적 과제가 됐다.

지호일 정치부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