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반전반핵’은 어쩌다 극우의 구호가 됐나

입력 2025-03-11 00:32

유럽에서 전쟁 반대는 극우 몫
‘휴전협상론’ 돌아보니 합리적

여성·노동자·농민 이익 대변
인종주의 폄하에도 지지 확대

극우는 변화 적극 수용했으나
진보는 유권자 설득하지 못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다를까

유럽의 진보 혹은 자유주의(리버럴) 세력의 대표 국가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당 출신이다. 좌경화에 반발해 독자세력인 ‘앙마르슈(전진)’를 만들었지만 당 이름에는 불평등을 해소하며 나아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경제적으로는 친기업적인 성향의 정책을 배제하지 않지만 정치·사회적으로는 모든 국민에 대한 기회 진작 등 진보 성향의 정책이 기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주 “유럽의 동맹국 보호를 위한 핵 억지력에 대해 전략적 대화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유럽을 위한 ‘프랑스 핵우산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그의 핵우산론에 가장 강하게 반발한 건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이었다. 프랑스 극우는 핵만 반대하는 게 아니다. 전쟁 반대에도 적극적이다. 극우 진영의 대표 인사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 하원 원내대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에서 철수하고, 크림반도는 이제 우크라이나로 반환될 수 없기에 러시아 합병을 인정하자”며 협상을 통해 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독일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전쟁 개입을 주장한 이는 녹색당 출신인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교장관이었다. 녹색당은 창당 당시 평화주의를 표방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탈퇴까지 언급했었지만 ‘러-우 전쟁’에 대한 입장은 달랐다.

이른바 ‘반전반핵(反戰反核)’은 오래도록 진보 진영을 하나로 묶는 구호였다.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극우의 구호처럼 여겨진다. 서구 리버럴 세력들은 극우의 전쟁 개입 반대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와 한통속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개입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르펜의 주장이 훨씬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었다. 막대한 인명 피해와 앞으로 돌아올 군사비 청구서는 우크라이나의 재건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유럽의 극우는 과거의 극우가 아니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유럽의 많은 극우 세력은 여성 인권과 노동자·농민의 이익을 주장한다. 동성애자 인권까지 챙긴다. 네덜란드의 핌 포르타윈이 대표적이다. 커밍아웃까지 했던 그는 자유를 억압하고 여성들을 공격하는 이슬람 이민자들을 막겠다는 주장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포르타윈이 동물권운동 활동가에 암살된 후 그의 뒤를 이은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지난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 성향 자유당(PVV)을 승리로 이끌었다. 기존 정치인들은 이들을 이슬람 혐오로 뭉친 극우 인종주의자로 폄하했지만 도시 서민들과 기존 정치권의 환경 친화 정책에 분노한 농민들, 이주자·난민으로 인한 안전 문제 등을 염려한 중산층 유권자들은 기꺼이 자유당에 표를 줬다. 지금 유럽에서 극우와 진보의 차이는 ‘이슬람 혐오’ 키워드뿐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 문제도 서방의 기존 정치인들이 했던 선택과 연결된다.

서방은 걸프전과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리비아·시리아 내전, 이슬람국가(IS) 격퇴전까지 개입했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등이 명분이었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민주주의는커녕 제대로 된 정부조차 세우지 못했고, 주민들은 여전히 내전에 시달린다. 그 결과가 난민 행렬이다. 유권자들 사이에서 난민과 이민에 대한 혐오가 커지고 극우 정치인들의 입김이 세진 것은 기존 정치인들의 선택과 맞닿아 있다. 유럽의 기존 정치가 난민과 이민자들로 인해 빚어진 사회 문제의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그들을 포용하는 게 올바른 일이라는 식의 주장을 반복한 것도 한몫했다.

이념적 올바름만 고민하는 동안 진보와 리버럴 세력은 현실 정치에서 판판이 실패했다. 진보 진영의 구호는 극우의 몫이 됐다. 기존 유럽 정치권의 가장 큰 문제는 유권자들의 불편과 두려움을 얄팍한 이기주의 정도로 인식하며 그들을 설득할 새로운 구호를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인종주의가 자유주의의 외피를 뒤집어 쓴 데 불과하다는, 극우 정당을 향한 비난과 폄하로는 유권자들의 선택을 되돌릴 수 없었다. 극우는 변화해왔으나 진보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셈이다. 우리 사회는 극우가 득세한 유럽과 얼마나 다른가. 진보 세력과 기존 정당의 구호가 유권자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극우의 구호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정승훈 논설위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