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기의 선관위,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입력 2025-03-11 00:31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는 중요한 정치 현안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일반 유권자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인을 선출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이때 유권자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 후보와 정당은 서로 구분되는, 명확한 정책 입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가 자신의 입장과 가장 가까운 후보 혹은 정당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한시적으로 정치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과 정당은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다음 선거 때 유권자의 평가를 받는다. 이렇듯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선거라는 절차가 중요하고,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계엄과 탄핵으로 얼룩진 현 상황에서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선관위 직원의 채용 특혜 비리와 근거 없는 부정선거론이 서로 얽히면서 신뢰에 흠집이 생겼다. 까다로운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어떤 개선책이 있을까.

우선 선관위의 헌법적 지위부터 살펴봐야 한다. 흥미롭게도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선관위를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와 동급인 헌법기관으로 지정하고 있다. 따라서 선관위의 독립성은 형식적으로 유지되지만, 선관위를 감시하는 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1987년 헌법이 만들어질 당시 선관위의 독립성을 우선시하는 목소리가 컸던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군부독재의 그림자가 가시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선관위 견제는 곧 정권의 선거 개입으로 이해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통령 산하 조직인 감사원이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감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관위 견제를 위해 필요한 조치는 무엇인가.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선관위를 행정부 산하에 두고 감사원의 감시를 받게 하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설사 개헌이 이뤄져도 행정부 산하의 선관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중립성 문제로 홍역을 치를 것이 명약관화하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입법부인 국회가 지금보다 더 꼼꼼하게 선관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다. 공정한 선거관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사람들이 선출직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선거라는 경기의 심판인 선관위를 선수인 국회의원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면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곰곰이 생각해 볼 여지가 남아 있다.

국회가 선관위를 견제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현역 국회의원 혹은 국회의원 후보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다양한 규제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촘촘하다. 예를 들어 공직선거법 112조에는 ‘통상적인 범위 안에서 선거사무소·선거연락소 또는 정당의 사무소를 방문하는 자에게 다과·떡·김밥·음료(주류는 제외한다) 등의 음식물을 제공하는 행위’는 허용한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2020년 선관위가 발간한 선거비용 보전 안내서에 따르면 치킨·컵라면·국수 제공은 위법행위다. 이러한 어이없는 규정 말고도 후보와 정당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규정과 돈줄을 지나치게 옥죄는 규정이 여전히 많다.

국회의 선관위 견제 기능을 강화하려면 선관위가 국회를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는 선거법 완화가 요구된다. 복잡한 선거법 규정은 상대방 정당 후보와 당선인을 불법 선거운동으로 고발하고, 궁극적으로 당선무효를 얻어내는 무기로 사용될 뿐이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원한다면 선관위를 정치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기관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이 선거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풀어주고, 선관위는 본연의 임무인 선거관리에 집중하되 유권자들이 집단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면 해결될 문제다.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다.

하상응(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