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트럼프가 소환한 부국강병

입력 2025-03-11 00:33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 첫 일성이다. 미국 우선주의, 더 나아가 일방주의 강화를 천명한 것이다. 트럼프 취임 이후 거의 매일 바뀌는 정책 발언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율 관세정책은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관세는 20% 인상됐고, 캐나다·멕시코에 대해서도 자동차를 제외한 25% 관세가 발효됐다. 다음달 초에는 세계를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가 부과될 것이 분명해졌다.

부메랑 효과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예상과는 다르게 미국 경제가 먼저 관세정책 불확실성에 노출되면서 트럼프발 경기 침체, 즉 트럼프세션(Trumpcession)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관세 정책에 따른 물가 압력 확대 우려가 소비심리를 냉각시키는 동시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주도의 정부 효율화 정책으로 인한 공무원 해고 등이 증가하면서 탄탄하던 고용시장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역성장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세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앞세운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지속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따른 국제 질서 재편이다.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정상회담 파행에서 보듯 미국은 더 이상 서방에 안보 우산을 대가 없이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일방으로 치닫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해 독일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한다는 의미의 부국강병 정책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재정 지출에 엄격한 규칙을 준수하던 독일은 막대한 돈 풀기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보수 연합정권은 10년간 인프라 투자를 위해 5000억 유로의 특별기금을 조성할 방침이다. 방위비 지출 확대를 위해 헌법에 규정된 부채 제한 규정도 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EU 집행위원회도 국방비 지출 확대를 위해 8000억 유로에 달하는 ‘유럽 재무장 계획(REARM Europe Plan)’을 27개 회원국에 제안했다. 부국강병 정책 분위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독일을 위시한 유럽 주요국 주가는 올해 들어 강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대형 기술주 중심으로 글로벌 증시를 쥐락펴락했던 미국 나스닥 주가가 조정을 받는 것과 대비된다. 혹자는 트럼프의 슬로건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빗대 ‘MEGA’(Make Europe Great Again·유럽을 다시 위대하게)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미 고율 관세에 직면한 중국 역시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협상보다 맞대응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번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올해 5% 성장률 목표를 제시했다. 관세 충격을 감안할 때 5% 성장은 야심찬 목표다. 이를 위해 재정적자율을 역대 최고인 GDP 대비 4%까지 확대해 적극적인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고 했다. 동시에 딥시크 출현 이후 가속화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굴기’ 정책도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신기술 분야에서 이례적인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 격화 및 트럼프의 우선주의 정책은 이전과 같이 교역을 통해 성장 동력을 찾는 시대가 저물고 있음과 국제질서 역시 급변할 것임을 의미한다. 자국 스스로 경제와 국방을 책임지는 부국강병 정책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정치 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도 하루속히 스스로 경제와 국방을 지킬 수 있는 부국강병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박상현 iM증권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