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한때는 없어서 야단이었던 집이 이제는 남아돌아 난리다. 어쩌면 집의 문제가 아니라 돈의 문제일 수 있다. 돈 빌려 집 지은 건설업체는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폐업 신고한 종합건설업체만 641곳이다. 2005년 이후 최대 규모다. 특히 비수도권 미분양 주택 증가와 이로 인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은 지역적 차원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될 추세다.
이런 위기상황에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비수도권 미분양 주택을 LH가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주택시장은 스스로 조정을 통해 균형을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기가 과열되면 규제, 침체되면 부양 정책을 반복하며 시장 자율성을 저해하고 있다. 이번 LH의 미분양 주택 매입 대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시장의 자연스러운 조정 과정을 방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LH는 대표적인 공기업이다. 공기업이란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기관이다. LH 역할 역시 저소득층이나 청년층과 같이 상대적인 사회적 약자의 주거 안정에 중점을 둬야 한다. 그럼에도 조직 규모가 크고 가용 자원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LH는 원래 기능 이상으로 많은 기대를 요구받고 있다.
이번 미분양 주택 매입 대책은 LH의 본래 임무를 넘어선 것이다. LH가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거나 특정 지역의 주택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개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LH가 이미 관리 중인 98만호의 건설 임대주택 중 6개월 이상 공실로 남아 있는 주택이 약 5만1000가구(5.2%)에 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간 건설사의 미분양 주택까지 매입한다면 힘든 낙타 등에 짐을 하나 더 얹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LH가 충분한 자금 여력이 있고, 공가 적체도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면 건설업계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공공기관으로서 당연한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수도권 주택난 해소를 위해 지난해 임대주택을 포함하여 10만6000가구 주택을 공급하고 3기 신도시를 비롯해 많은 공공택지를 개발하느라 투입한 자금도 만만치 않은 마당에 민간 건설사의 미분양 주택, 특히 장기적으로 공실로 남을 가능성이 높은 비수도권의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도록 하는 것은 억지다.
어렵고 힘들다고 우는소리를 하면 바로바로 달래주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조금씩 내성을 키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건설업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LH가 나서는 모습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분양 주택 매입에 들어간 자금은 결국 LH의 부채를 늘릴 것이 뻔한데, 그간 과도한 부채 때문에 LH가 받은 비난은 이런 역할로 피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LH가 건설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역할까지 담당해야 한다면, 그에 걸맞은 충분한 권한과 위상을 부여한 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김찬호(중앙대 교수·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