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을 향한 ‘안보 무임승차론’을 거듭 제기하면서 한국을 겨눈 직접 압박도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는 이미 여러 차례 한국을 ‘미국 수혜를 입은 국가’로 지목하며 사정권에 넣어 왔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 청구서’ 최상단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적힐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국의 현실적인 상황과 미·일 정상회담 내용 등을 고려하면 최소 2배 증액된 방위비 청구서를 내밀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9일 외교가에 따르면 미국은 이달 중으로 조율 중인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방한을 계기로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재협상과 국방비 증액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향해 “돈을 내지 않으면 방어하지 않겠다. 이것이 상식”이라고 엄포를 놨다. 한국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결국 동맹을 향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을 예고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일각에선 선제적으로 방위비 2배 인상을 언급한 일본의 제안이 미국 요구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방위비 협상 과정에 참여한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방위비를 2배까지 증액해 달라고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틀 내에서 직접 비용을 계산했을 때의 최대치”라고 말했다. 안보 분야 전 고위직 인사도 “미국이 최소 2배 더 내라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미는 지난해 협상에서 2026년 방위비 분담금을 1조5000억원 수준으로 합의한 바 있다. 전년 대비 8.3% 인상한 것이다. 이 금액의 최소 2배면 ‘3조원+α’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1기 당시에는 미국이 약 6조원 인상을 요구했었다.
미국이 전략폭격기나 핵추진항공모함 등 전략무기 전개비용까지 분담금에 포함해 요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방위비는 ‘주한미군 인건비·군사 건설비·군수 지원비’로 구성되는데, 여기에 전략자산 전개 비용 조항을 추가로 넣어 방위비 추가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이 전략자산 전개와 한·미 연합훈련 비용을 건드리면 이를 통해 대북제재를 실현하는 우리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처럼 선제적인 제안과 함께 반대급부를 ‘딜’하는 전략도 제안했다. 외교부 고위관료 출신 인사는 “일본처럼 파격적인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제안해볼 수 있다”며 “거절하면 젤렌스키 회담처럼 파국으로 갈 수 있으니 내줄 것은 내주면서 반대급부로 우리 안보의 취약점을 보완할 미국의 추가적인 군사적 도움을 얻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략자산 전개 정례화, 한·미 연합훈련 강화 등을 요구하며 실익을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박 교수도 “미국은 일본을 압박하면서도 증액분은 모호하게 언급하고 있다”며 “일본이 선제적으로 2배 인상을 제안했고, 그 증액분으로 미국산 무기 구입 등을 거론하며 트럼프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결국은 미국과 협력하는 구도를 유지해야 한다. 방위비 재협상 압박이 오면 트럼프가 자랑할 만한 제안을 던지고 핵우산이나 경제 안보 이슈 등에서 실질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