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시민단체 “양보할수록 의료계 안하무인 태도 보일 것”

입력 2025-03-10 02:18
한 시민이 9일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 앞을 지나가고 있다. 정부가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전격 수용하면서 의료개혁 후퇴를 우려하는 시민사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2026학년도 의대 모집정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는 안을 내놓자 시민사회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환자·시민단체는 의료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역행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또 의료계 집단행동으로 정부가 계속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면 향후 의대 증원을 비롯한 의료개혁 추진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9일 국민일보에 “정부가 의료계에 굴복해 더 많은 양보를 할수록 이들은 더 강경한 요구만 내놓는 안하무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환자단체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지난 1년 동안 수많은 환자의 목숨이 희생됐다. 의대 증원 원점 회귀는 무책임하고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환자들은 의·정 갈등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지역·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의대 증원에 공감하며 지난 1년간의 혼란을 견뎌왔다. 하지만 정부가 의료계 요구에 거듭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자 의료개혁이 좌초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거세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의료계 집단행동의 주요 국면마다 스스로 세운 원칙을 허물었다. 지난해 7월에는 사직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철회했고, 지난해 10월엔 동맹 휴학에 나선 의대생들의 휴학계 승인을 대학 자율에 맡겼다. 전공의와 의대생 복귀를 위한 유인책이었지만 복귀 효과는 미미했다. 지난 7일 교육부가 전국 의대 총장·학장단 요청을 수용해 내년 의대 정원을 3058명으로 되돌리기로 했지만 여전히 대한의사협회는 “정책 실패 인정” “책임자 경질”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환자·시민단체는 ‘원칙에 따른 대응’을 요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의대 교육 정상화는 수업을 거부한 의대생에게 특혜 없이 학칙이 적용된다는 원칙과 상식이 지켜질 때 가능하다”며 “학생들이 제적될 위기에도 복귀하지 않는 이유는 집단으로 버티면 정부가 선처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논의를 거부하고 기득권 지키기에만 급급한 집단에 일체의 선처와 관용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양보를 거듭할수록 의료 정책이 후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전날 성명에서 “의대 증원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의사집단에 대한 백기투항”이라며 “앞으로 의사집단이 반대하면 어떤 의료개혁도 할 수 없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의대생이 돌아오지 않으면 기존대로 2000명 증원된 5058명을 뽑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의대생·전공의단체는 복귀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는 “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5058명을 뽑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