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공산당 영도’와 ‘인민민주 전제정치’가 헌법에 규정된 사회주의 국가다. 당과 정부가 강력한 권력을 누리고 시장 논리보다 국가와 체제의 안보가 우선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신봉하는 서방 국가들은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혁신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봤다. 중국 산업이 모방과 복제에 머물던 추격자 시기에는 이런 시각이 타당해 보였지만 첨단기술을 선도하는 오늘날에는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기술 혁신에선 당과 정부가 중장기 정책을 세우고 집중적인 투자를 한 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가 지도부가 선거를 치르지 않고 장기 집권하는 체제도 정책 일관성 유지에 도움이 됐다.
중국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폈다. 재정도 과감하게 투입했다. 올해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지난해보다 10% 늘린 3981억 위안(80조원)으로 정했다. 지난 1월에는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초기 자본금 600억 위안(약 12조원) 규모로 인공지능(AI) 국영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국가 주도의 R&D 투자는 미래 가능성을 보고 장기 투자하는 ‘인내자본’ 역할을 했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규모의 장점을 활용해 다른 나라가 흉내내기 힘든 대규모 연구 인프라를 구축했고 대학교육 시스템을 유연하게 개편해 중점 육성 분야에 양질의 인재를 공급한 것도 주효했다.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지난해 9월 보고서에서 “중국의 빠른 혁신은 여러 선진산업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지배하려는 중국공산당의 결단력 있는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딜레마는 기술 굴기를 위해선 민영기업의 창의성과 활력이 필수적이지만 서구 자유시장경제 국가처럼 이들에게 폭넓은 자유와 권리를 허용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최근 AI와 로봇, 양자기술 등의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국유기업이 아니라 민영기업들이었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에선 국유기업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공공부문 등에선 민영기업의 참여가 제한된 영역이 많다. 2010년대 후반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은 나아가고 민영기업은 물러선다는 ‘국진민퇴’ 기조 아래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달 17일 민영기업 좌담회에서 공정한 대우와 지원을 약속한 것은 역설적으로 이들 민영기업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은 민영기업의 기업가 정신과 혁신 없이는 2049년까지 완전히 발전하고 번영하는 경제를 건설한다는 장기 비전을 달성할 수 없다”면서 “이날 좌담회는 중국 정부가 이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신뢰는 잃는 것보다 되찾는 게 훨씬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기술 혁신 지속 여부는 민영기업의 성장을 당과 정부에 대한 도전과 위협으로 받아들여 또다시 규제할지, 민영기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유로운 활동 공간을 넓혀줄지에 달려 있다.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와 압박도 난제다. 첫 임기 때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집권 2기 들어 중국에 20%의 관세를 추가 부과했다. 기술 봉쇄 강화도 예고된 상태다. 최근 중국의 첨단기술 개발 성공으로 봉쇄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중국으로선 봉쇄 상태에선 기술 개발에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기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도 미국의 기술 봉쇄에 따른 어려움을 토로했다.
중국이 기술 굴기를 위해 천문학적 재정을 투입하는 대신 부실한 사회 안전망을 방치한 것도 위험 요인이다. 중국이 사회 보장에 투입하는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3.4%로 선진국은 물론 중소득 국가에도 미치지 못한다. 첨단기술산업 육성으로 대량 실직과 사회 불안이 초래되면 기술 굴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미국 허드슨연구소는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부의 심각한 불평등, 적은 세수, 국가안보와 제조업·기술에 대한 자원의 우선 투입으로 중국은 복지 프로그램을 개선할 자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