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중독 비만 아동에 “살만 빠지면 참 예쁠텐데…”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입력 2025-03-12 00:04

13세 A양은 키 160㎝에 몸무게 74㎏으로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85번째 백분위 수 이상이어서 비만에 해당한다. A양은 평소 밥을 빨리 먹고 많이 먹는 편이다. 채소는 거의 안 먹고 고기를 선호한다. 엄마가 못 먹게 해서 책상 서랍 속이나 침대 밑에 젤리나 사탕, 과자를 숨겨두고 먹는다. 일이 뜻대로 안 되거나 기분이 상할 때 달고 매운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 A양은 평상시 학원 문제로 엄마와 다툼이 많고 ‘인생에 공부가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늘 “게으른 데다 먹는 것 조절도 잘 못 하는 게 한심하다”고 얘기해서 속상할 때가 많다.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박경희·안혜지 교수팀이 제시한 ‘음식 중독에 빠진 비만 아동’의 전형이다. 박 교수팀은 국립보건연구원과 공동 연구를 통해 음식 중독 위험이 높은 아이들이 비만 정도가 심하고 우울·불안 등 감정 문제와 충동적 행동도 심각하다는 연구결과를 최근 국제 학술지(Obesity Research & Clinical Practice)에 발표했다.

음식 중독은 별도의 질병 코드가 구분돼 있지는 않으나 단맛이 강한 음식 등을 먹으면 뇌의 보상체계가 작동하면서 쾌락과 연관된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유도되는 특징을 보인다. 알코올·마약 등 물질 중독이나 도박 같은 행위 중독과 유사한 기전으로 해석된다. 단맛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다음에 또 그런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든다.

이번 한림대·국립보건연구원 연구(BMI 85 백분위 수 넘는 과체중 이상 8~16세 224명 대상)에서 전체의 19.6%(44명)가 음식 중독 위험군에 해당됐다. 연구팀은 미국 예일대가 개발해 타당도와 신뢰도가 검증된 청소년용 음식 중독 척도(한국판 YFAS-C)를 사용해 평가했다. 평가 결과 음식중독 위험군 44명에는 음식 중독군 17명과 고위험군 27명이 포함됐다.

또한 음식 중독 위험군의 심리·행동 평가에서 음식 중독 증상이 많을수록 불안·우울 등 감정 문제와 충동적 행동이 심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비만도와 부모 양육 태도 등을 보정한 후에도 문제 행동의 총점과 공격성은 높아지고 학업 수행 능력, 자존감은 낮아졌다.

안혜지 교수는 10일 “아동·청소년 비만에 접근할 때 영양이나 운동 교육을 아무리 해도 체중 변화가 없는 경우가 있다. 비만의 원인을 찾는데 심리·정서적 요인, 환경적 요인을 함께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가 먹는 것 자제를 잘 못 하고 치료에 반응이 없는 경우 먹는 것이나 운동만 시킬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이런 상태가 되는데 기여할만한 환경·심리적 요인을 포함한 다각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면 일괄적인 내용을 따르게 하기보단 개개인에게 맞는 대응이 필요하다. 가족 내에서 비만 아이를 바라보는 인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어떤 모습이라도 아이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박경희 교수는 “‘살만 빠지면 참 예쁠 텐데, 참 좋을 텐데’라는 말은 지금은 안 예쁘고 안 좋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자신의 현재 모습을 싫어하게끔 하는 원인이 된다”면서 “아이 자신이 어떤 상태, 어떤 모습이든지 상관없이 자신을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