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도 시장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구글이 다시 정밀 데이터 반출을 한국 정부에 요구 중이다. 구글은 일부 공산·독재국가를 제외한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구글맵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통하는 만큼 서비스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는 북한과 휴전 중인 상황에서 민감한 안보 데이터가 포함된 정밀 지도를 해외 서버로 반출하는 데 난색을 보이고 있다.
9일 학계에 따르면 김득갑·박장호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객원교수는 최근 발간한 ‘디지털 지도 서비스 규제 개선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구글맵에 대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교수는 “정부 규제가 네이버를 비롯한 국내 지도 서비스 기업들의 시장 독점을 지켜주는 방파제 역할로 전락해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국가 안보도 중요하지만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지리적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구글맵에 대한 데이터 개방은 상당한 시장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정밀 지도 반출이 이뤄지면 2027년까지 관광수입이 약 226억 달러(약 33조원) 증가하고 구글맵의 시장 점유율은 25%까지 상승하며 네이버 지도에 이은 국내 2위 사업자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연구진이 언급한 ‘정부 규제’는 해외 지도 사업자에 대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불허 기조를 의미한다. 해외 대부분 국가와 달리 한국 정부는 이 데이터를 구글에 내어주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옆 나라인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구글맵을 통한 길찾기 등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국내 지도 시장은 사실상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이 양분하는 모양새다.
구글은 구글맵이 전 세계적으로 쓰이는 공통된 지도 서비스라는 점을 들어 한국도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트래픽 분석기관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구글맵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구글맵 이용이 불가능한 국가는 중국·북한·시리아 등 뿐이다. 반면 정부는 2007년 이후 안보 문제를 이유로 데이터 반출을 불허하며 18년간 구글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지도 데이터를 보관하는 방안이 차선책으로 언급되지만 정부와 구글 양측 모두 구체적인 제안은 없는 상황이다.
구글 관계자는 “정밀 지도 데이터를 반출해도 유럽 등 해외 서버에 안전하게 다중 분산 저장하는 만큼 문제가 없다”며 “방한 외국인 편의 등을 위해 구글맵 서비스 고도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